얼마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우석 박사는 섀튼에 대한 섭섭함을 표했습니다. 왜 황우석 박사는 섀튼을 원망했을까요? 섀튼은 황우석 연구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논문조작에도 관여했을까요?
앞서 얘기했지만 조작된 논문의 제1저자로서, 교신저자로서 황 박사의 책임은 매우 무겁습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논문조작의 최종적인 책임은 결국 연구책임자였던 황 박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황우석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했던 피츠버그대 섀튼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과학과 정치의 미묘한 관계가 숨겨져 있습니다. 과학이 정치를 만났을 때의 생길 수 있는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었습니다.
"섀튼은 누구인가?"
새튼은 오랫동안 평범한 과학자였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했고, 1975년 동물난자의 분자구조와 기능에 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로 바다성게에 대해 연구하던 섀튼은 1990년 위스콘신대학으로 옮겨 생쥐, 소, 돼지 등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때까지도 섀튼 유명 과학 잡지에 논문을 실지 못하는 평범한 연구자였습니다.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 전해지자, 섀튼은 오리건의 국립영장류연구센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원래 섀튼은 인간을 대상으로 복제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대신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를 대상으로 복제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원숭이 복제는 쉽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성공할 기미가 안 보이자, 섀튼은 연구방향을 조금 바꿨습니다. 어려운 성체세포를 이용한 복제가 아닌 쉬운 배아분할로 복제 원숭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배아분할은 오래전에 개발돼 하등동물과 가축 복제 등에 사용된 구식 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섀튼이 배아분할에 의해 최초로 탄생시킨 복제 원숭이 '테트라(Tetra)' 관한 연구 논문은 당당히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평가는 냉혹했습니다. 새로운 복제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쌍둥이처럼 닮은 두 마리가 태어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체세포를 이용한 핵이식만 복제 연구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을 만큼 배아분할 연구는 오래된 방식이었습니다.
그럼, 왜 '사이언스'는 평범한 논문을 왜 채택한 것일까요? 이는 과학도 대중적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과학연구는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주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 잡지라고 평가받는 '사이언스와 '네이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원숭이 복제는 과학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대중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주제였습니다.
언론도 재빨리 이 연구 성과를 보도했습니다. 대중들은 이제 복제인간의 출현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점을 노렸는지 섀튼은 논문에서 영장류 “복제(CLONE)”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섀튼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주제로 연구 방향을 바꾸면서 그가 그렇게 바라던 '스타 과학자'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네이처', '사이언스', '셀' 같은 세계적 과학 잡지에 논문이 실리면 학문적 명성은 물론 연구비, 연구인력 등이 함께 따라옵니다. 야심이 컸던 섀튼은 영장류 연구센터 팀장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리건을 사랑하지만 과학을 더 중요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피츠버그대 발생연구센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섀튼은 본격적으로 체세포를 이용한 원숭이 복제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섀튼 연구팀은 핵이식된 원숭이 복제배아는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를 이동시키는 방추제(Spindle)가 단백질 결함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체세포를 이용한 영장류 연구는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 연구 결과도 2003년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이는 결국 영장류는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한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됐고, 섀튼은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섀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을 복제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물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섀튼은 '영장류는 복제가 안 된다'는 논문만을 발표했을 뿐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논문으로 세계 최고의 복제 전문가로 거듭났습니다.
황우석과 섀튼의 만남…사이언스 논문 게재를 돕다
황 박사가 섀튼과 만나게 된 계기도 이 논문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줄기세포를 성공적으로 확립해가던 황 박사는 섀튼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마침 황우석 연구팀이 '네이처'에 투고한 논문이 거절당하자, 황 박사는 네이처에 재도전하는 대신 '사이언스'에 투고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때부터 섀튼의 도움이 시작됐습니다. 섀튼은 '사이언스' 편집인들에게 로비를 펼치면서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을 수정·보완해줬습니다. 결국 이 연구논문은 2004년 '사이언스'에 표지 논문으로 실렸습니다.

그 뒤로 섀튼은 황우석 연구팀의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더 깊이 개입했습니다. '논문 조작'이라는 비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섀튼은 실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서둘러 논문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그의 급박한 요청에 맞춰 다양한 실험 결과를 보냈습니다. 섀튼은 연구논문을 빨리 발표하려고 했고, 황 박사는 거기에 맞춰 따라가기 급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줄기세포가 곰팡이에 오염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논문 작성은 계속됐습니다. 섀튼은 줄기세포 오염 사고를 보고받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논문 투고를 서둘렀습니다. 이렇게 급박하게 논문을 준비한 끝에 2005년 5월 19일 새로운 연구 성과가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이 논문으로 황 박사도 세계 과학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황 박사와 섀튼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둘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황 박사는 국제 과학계에 자신을 알려줄 힘 있는(?) 과학자와의 인맥이 필요했고, 섀튼은 자신이 풀지 못한 복제 연구에 돌파구를 제시할 실력 있는 과학자가 필요했습니다. 2003년 11월 말 섀튼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두 사람은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했고, 다음해 1월 말엔 황 박사가 피츠버그를 방문해 공식적인 합의를 맺었습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거의 매달 만났고, 수시로 이메일이나 전화를 주고받으며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이를 계기로 황우석 연구팀의 연구자들이 섀튼의 연구센터로 파견가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9월 복제 전문가 현상환 박사가 제일 먼저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건너갔고, 최고의 핵이식 기술을 가진 박을순도 옮겨갔습니다. 그 뒤 미즈메디병원의 박종혁과 김선종 박사도 섀튼 연구센터로 건너갔습니다.
그 뒤 섀튼 연구팀은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원숭이 복제배아를 배반포까지 배양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불과 1년여 전 자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내용을 뒤집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현상환, 박을순 같은 황우석 연구팀 연구자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섀튼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황우석 연구팀과의 협력 관계를 맺는 동안 황우석 연구팀의 핵심적인 핵이식 기술과 줄기세포 배양기술을 확보하려고 애섰습니다. 이 기술을 이용한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볼 때 새튼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 기술들을 습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섀튼은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을 기반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1천 6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얻었습니다.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하도록 도와주었다는 명목으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특허의 지분을 요구했습니다. 장차 세워질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재단 이사장 자리를 노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섀튼은 자신의 연구팀이 주도한 논문에는 처음을 제외하곤 황우석의 이름을 넣지 않았습니다.
섀튼, 황우석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다
2005년 11월 12일, 황우석을 형제라고 부르던 섀튼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황우석 연구팀과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사전에 황 박사와 상의하거나 언질도 없이 급작스럽게 이뤄진 조치였습니다. 당시는 'PD수첩'을 통해 난자 관련 문제가 언론에 보도됐을 때고, 줄기세포 조작에 대한 취재도 상당부분 진행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미 핵이식과 줄기세포 배양 기술을 일정 부분 확보한 섀튼은 서둘러 결별을 선언한 것입니다. 결별 이유로 난자 문제만을 들었지만, 정황상 줄기세포의 진위 문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피츠버그대학은 섀튼에 대한 조사를 벌였습니다. 조사위원회는 조작된 '사이언스' 논문과 관련해 연구성과 감독 부실 등에서 부적절한 처신(research misbehavior)이 있었지만, 좁은 의미에서 과학연구의 부정행위(research misconduct)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렇게 새튼이 관대한 처분을 받은 데는 황 박사와의 재빠른 결별이 주요했습니다. 섀튼은 황우석 연구팀과 빨리 결별을 하되 그 사유를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난자 문제만을 거론해 피그버그대학을 보호했습니다. 피츠버그대학도 야심차게 준비한 연구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섀튼에게 면죄부를 줬습니다.
이처럼 새튼은 황우석보다 한 수 높은 정치적 기술(?)을 발휘했습니다. 협력을 통해 자신의 이익은 최대로 챙기면서 빠른 결별을 통해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자신도 구한 것입니다. 황 박사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섀튼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토로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에는 '과학과 정치'에 대해 쓰고 황우석 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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