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칠레 광부 33인 구조 1년…그들은 지금

입력 : 2011.10.12 08:14

69일간 사투 끝 생환 '유명세' 톡톡
스포트라이트 걷히자 부적응·돈 문제 직면
구조 이끈 칠레 정부는 학생시위로 지지율 참담


69일간 칠레 산 호세 광산 지하 갱도에 갇힌 채 사투를 벌였던 광부 33인이 구조된 지 13일(현지시간)로 1년을 맞는다.

당시 세계적인 관심 속에 온종일 진행됐던 구조작업은 지구촌을 감격과 기쁨으로 물들였고 하나둘씩 구조 캡슐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광부들은 인간승리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과학과 기적이 연출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이후에도 여러 가슴 찡한 일화를 쏟아내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큰 유명세를 탔다.

생환한 뒤 개인적으로 소원과 도전을 일군 인물도 있고, 당시 경험이 여러 책에 담기며 악몽 같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세상과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구조 뒤 맛봤던 꿈같은 시간을 뒤로한 채 헤쳐나가야 할 현실 앞에 직면해 있다.

매몰 당시 받았던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물론 취업난과 돈 문제가 생존 광부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69일간의 매몰과 구조 그리고 1년

33인의 광부들이 69일 만에 다시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실낱같은 희망 속에 구조 탐침봉에 매단 'SOS' 쪽지 덕분이었다.

광부들은 매몰 17일째가 되던 지난해 8월 22일 구조작업대가 지하로 찔러놓았던 탐침봉에 '모두 무사하다'는 내용의 쪽지를 붙였고 이를 확인한 구조대는 필사적인 노력 끝에 매몰 69일째인 10월 13일 광부 33인을 모두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22시간에 걸친 구조작업 끝에 땅 위 한 자리에 모인 광부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과 함께 갱도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대스타'가 돼 있었다.

그들이 털어놓은 소소한 얘기들은 갱도 내 참담했던 경험과 맞물리며 영웅적 일화로 소개됐고, 이들이 겪었던 생존의 몸부림은 언론과 강단, 책을 통해 일종의 삶 교훈이 돼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생존 광부들에게는 TV출연과 세계 주요 나라의 러브콜도 쏟아졌다.

TV에 모습을 나타낸 광부들은 인기있는 유명인사로 떠올랐고 미국과 영국, 그리스 등으로 떠나 기념행사와 강연장에 서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밀려오는 방송출연으로 쌓인 출연비에 광부들은 잠시 고된 시련을 잊기도 했다.

구조 뒤에는 개인적인 영예와 행복을 안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매몰 당시 동료 사이에서 '만능 엔터테이너로'로 통했던 에디손 페냐(34)는 좁았던 갱도를 벗어난 뒤로 뉴욕마라톤 대회를 완주하며 생존의 기쁨을 만끽했고, 다른 생존 광부인 에스테반 로하스(44)는 올해 4월 25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당시 구조작업을 총지휘했던 라우렌세 골보른 칠레 광업장관도 구조작업을 성공으로 이끈 뒤로 에너지 장관을 맡으며 차기 대통령 주자로 급부상했다.

미국 주요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보도에서 과거에는 골보른 장관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기업가 출신의 정치인이었지만 광부 구조작업을 이끈 1년 뒤에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중의 한 명이 됐다고 평가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쏟아지는 현실

구조작업 이후 생존 광부들을 맞은 건 화려함만은 아니었다.

광부들은 뜨겁게 쏟아졌던 조명이 꺼져가면서 하나둘씩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장기간 매몰의 경험은 평범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33명의 광부 중 14명이 매몰 후유증으로 광산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조기 은퇴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광산 복귀를 결정한 나머지 광부들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실업상태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명세 탓에 한동안 목돈을 손에 쥐기도 했지만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면서 경제적인 고민을 되풀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생환 광부 중 31명은 7월 사고가 난 광산에서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정부를 상대로 1인당 54만달러(한화 5억7천만원)를 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광부들이 뒤늦게 법원을 찾아 거액의 배상소송을 제기한 배경으로 그들이 놓인 경제적 상황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광부들의 집단 소송은 여론으로부터 사고 피해자라는 동정보다는 아직도 유명세를 이용해 돈벌이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론의 힘이 필요한 정부 상대 소송에서 이들의 처지가 곤란을 겪을 수도 있는 이유다.

구조작업 현장에서 책임감을 발휘한 덕에 지지율 상승효과를 톡톡히 봤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1년이 지난 지금 60%가 넘었던 인기는 온데간데없이 쓰디쓴 추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광부 생환을 이끌어냈던 지난해 10월 지지율이 63%에 달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30%를 겨우 턱걸이하는 힘겨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반기 들어 시작된 대규모 학생시위가 가열화되면서 지지율이 급속히 빠진 탓이다.

그는 칠레 공공연구센터(CEP)가 두 달 전 시행했던 여론조사에서는 26%의 지지율로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지난해 12월 44%와 비교할 때도 지지율이 18%포인트나 빠진 것으로 9월 들어 간신히 30%대를 회복했을 뿐이다.

정부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흔들리는 탓에 칠레 현지에선 광부들의 기적적인 구조작업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기념행사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현지 TV를 통해 매몰 당시 일화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이 방영되며 아름다웠던 구조순간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