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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원순과 '티 파티' (Tea Party)

박병일 기자

입력 : 2011.10.05 11:20|수정 : 2011.10.05 12:06


서울시장 야권 후보에 박원순 후보가 선출됐습니다. 경기지사와 김해시장에 이어 서울시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 민주당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학규 대표가 책임을 통감하고 동시에 '대권을 염두에 둔 출로 모색'(?)을 위해 민주당 대표직을 던지면서 제 1야당 전체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게도 큰 고민거리입니다.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새삼 재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변변한 조직조차 없는 시민 대표의 응집력을 목도하면서 잔뜩 긴장한 모습입니다. 실제로 이번 야권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 측은 2~30대를 중심으로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강력한 지지 연대를 확보했음을 대내외에 과시했습니다. '여론의 지지 만으로는 힘들 것이다. 결국 조직력이 없어 추동력을 잃을 것이다'라고 예측했던 기존 정당들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역으로 기존 정치를 바꾸겠다는 적극적 의사 표출로 바뀐 현장을 보게 된 겁니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도 그와 유사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티 파티'(Tea Party) 운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델라웨어와 알래스카 주지사 예비선거에서 티 파티 후보들이 줄줄이 공화당 거물들을 물리치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여야는 물론 미국 시민사회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티 파티' 운동은 지난 2009년 1월 미국의 한 증권 중계인이 새 정부의 조세정책에 반대하면서 의회에 티(tea) 한 봉지씩을 보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불러온 보스톤 티 사건에서 착안한 것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조세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속속 티 파티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야당인 공화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데 대한 시민의 불만과 기존 정치에 대한 반감이 결합되면서 티 파티는 그 세력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게 커져 나갔습니다.

당초 티 파티 운동이 시작될 때만 해도 미국에서는 그저 평범한 이익단체의 하나 정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점차 조직화 됐습니다. 유권자 지지를 규합하고 정치자금을 모으고, 더불어 전략적으로 "이길 곳에 집중하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영향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지난해 9월 21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를 보겠습니다.

"티 파티 운동의 목표는 이제 취약한 민주당 후보들을 겨냥하고 있다. 그들의 지지 층을 넓혀가면서 수백만 달러를 모금하고, 전국적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비록 중간선거에서 낙선했지만 예비 선거에서 공화당의 거물 마이클 캐슬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던 델라웨어의 크리스천 오도넬은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며칠 사이에 가볍게 수백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선거자금을 댄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조직화하는 효과도 거뒀습니다. (티 파티 전국 본부에서 그녀를 위해 20만 달러를 모금해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 워싱턴에 본부를 둔 '프리덤 웤스'(Freedom Works)가 그러하듯 전국적인 대규모 버스 투어와 모금활동에 돌입하면서 티 파티는 조직적인 준비에도 서툴지 않은 전문성을 얻게 됐습니다.

미국의 유권자의 절반 가량은 민주당이나 공화당 지지자들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인디펜던트라는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입니다. 불과 3년 전에 오바마를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것도 이들 인디펜던트들이 움직인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 인디펜던트들도 티 파티에 의해 스탠스를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한국으로 되돌아 오겠습니다. 박원순 후보는 '펀드'를 통해서 선거자금을 모금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지지 층의 성격 분석도 가능합니다. 티 파티의 모금 운동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박 후보측은 또 앞서 말한 대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기존 정당의 동원 조직의 힘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미국의 티 파티도 그러 했습니다. 과거 선거에서 보수 여당 조직력에 대한 야당의 강력한 대응 수단이었던 소셜 네트워크가 이제는 시민 후보의 동력으로 넘어간 겁니다.

    

과거 한국 시민단체의 유권자 운동은 위법 논란도 있었습니다만, 낙천 낙선 운동이 주류였습니다. 그것이 기존 정치에 대한 시민 사회의 소극적 저항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시민 사회가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적극적 참여 형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를 놓고 시민단체의 성격을 잃은 '정파화'라는 논란도 있지만, 미국의 티 파티 사례에서 보듯, 시민 사회의 정치 직접 참여는 시대적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정치를 '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한 미국의 학자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정치가 더 이상 정당간의 권위적 배분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 다시 말해서 이익집단들의 자발적인 비 권위적 배분행위가 공공연하게 힘을 받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정파화'는 분명 기성 정치를 바꾸는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오바마 대통령과 티 파티의 힘입어 승리를 거둔 공화당 (티 파티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의 경우는 티 파티 조직이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은 티 파티 운동 이후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기까지 다소간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분명 기존처럼 대립각만 세우고 협상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듯 합니다. (한미 FTA 이행 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협상도 그 한 예가 될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티 파티 운동과 한국 시민사회의 반란(?)은 분명 다른 점이 있습니다. 티 파티 운동 자체가 조세 부담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해서 복지에 과도한 재정을 쏟고 있는 민주당 정책에 대한 불만에 힘입은 보수 공화당의 한 분파로 시작된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사라 페일린이 정치적으로 티 파티를 이용하기 전까지 공화당의 란 폴 의원이 티 파티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는 복지 지출이나 조세 부담에 대한 반감이 아닌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부패 정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표 받기 전과 표 받고 나서 180도 달라지는 기성 정치를 보면서 정치가 그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경고장으로 보여집니다.

작년 중간선거를 전후해 미국 언론을 연일 뜨겁게 달궜던 티 파티 운동은 이제 완전히 잊혀진 듯 합니다. 또다시 선거철이 오면 다시 되살아날지는 몰라도 티 파티 운동은 그 태생만큼이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모양새입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도전으로 파란을 일으켰으나 의회 구조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대로 시민사회의 반감과 도전을 겪었던 기존 정당이 바뀌는 효과를 불러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서울시장 선거…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만, 그 선거가 끝난 이후에 우리 정치가 얼마나 바뀔 것인가도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대목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