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사람들이 낳은 최악의 결과
1986년 미국의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 발사는 재앙으로 끝났습니다. 전국에 TV로 생중계 되는 가운데 발사 1분만에 공중 폭발한 것입니다. 우주왕복선 발사를 밀어붙인 정치권을 비롯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사라들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연구한 사회학자 다이앤 보간은 챌린저호 발사 전에 있었던 장시간의 논의 과정에 비정상적인 부분이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나중에 그 사건을 결과의 논리에 따라 접근한 외부 인사들은 그와 같은 결정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당시에 오래 누적된 적당의 논리에 따라 그 문제를 접근한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다이앤 보간)."
어떤 개인의 판단착오나 일탈 때문이 아니라, 우주왕복선 발사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기 역할'을 수행한 것이 종합적으로는 상식과 동떨어진 결과, 즉 공중폭발을 일으켰다는 분석입니다.
영화 '도가니'를 본 관객들은 분노합니다. 청각장애학생들을 성폭행, 성추행한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법적 결론은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영화에 묘사된 법원-검찰-변호사의 부패한 결탁은 우리 사법 현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극대화합니다. "과연 이런 결정을 내린 부패한 판사, 검사는 누구이고, 이들과 결탁해 전관예우를 받은 변호사는 누구인가?" 도가니의 분노는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찾아내라, 즉 책임자를 찾아내라는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와 현실
'책임자'를 찾아내기에 앞서 영화와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3명(영화 초반부에 숨진 학생까지 모두 4명)의 청각장애학생이 교장, 행정실장, 교사에게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합니다. 서울에서 온 미술교사와 시민운동가, 그리고 방송사의 고발 보도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학생들을 추행해 온 교장 등 3명을 구속 기소됩니다.
그러나 지역 고등학교 출신 법조인이자, 부장판사를 끝으로 갓 퇴임해 '전관예우'를 받은 변호사, 로펌 영입 제안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배제한 검사, 그리고 학교 선배인 변호사를 '예우'해 준 판사 때문에 가해자 3명은 모두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납니다.
실제는 어떨까요? 광주 인화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등 교사들의 성폭행·성추행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영화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숫자가 좀 다른데, 인권위가 고발한 가해 교직원은 모두 6명이었고, 이들이 추행한 피해자들도 10명 정도됐습니다.
재판 결과는 영화와 조금 다릅니다. 1심에서는 교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되는 등 검찰이 기소한 5명 가운데 4명에게 징역형이 선고됩니다(1명은 무죄). 2심에서 상황은 영화와 비슷해집니다. 죄질이 가장 나쁜 교장이 집행유예를 받는 등 2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인권위가 고발한 6명 가운데 2명은 집행유예, 1명은 무죄, 2명만이 1년도 안 되는 징역형을 받은 것이죠(1명은 처음부터 불기소).
누가 '악인'인가?

그렇다면 실제 재판에 참여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 중에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요? 누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쁜 놈일까요?
일단 이 사건을 기소하고 공판을 담당한 검사들은 용의선상에서 배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처럼 공판 검사가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배제한 사실도 없고, 구형한 형량도 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심 공판을 담당했던 임은정 검사(현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근무)는 검찰 게시판에 공개한 당시 일기에서 "치가 떨린다… 소리 없는 비명이 기억 저편을 박차고 나온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전관예우'를 받은 가해자 측 변호사가 '악인'일까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이끌어 낸 문정현 변호사는 전관예우 의혹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문 변호사가 판사 생활의 대부분을 광주 지역에서 보낸 이른바 '향판' 출신이긴 하지만, '도가니' 사건을 수임한 것은 퇴임 후 7년 뒤였습니다. 대법관 출신이라 할지라도 '전관예우'를 유지하기 어려운 기간이죠. 영화와 달린 문 변호사는 재판장인 이한주 부장판사와 학연이나 지연도 없다고 합니다. 문 변호사는 "2심 재판장인 이한주 부장판사와 전혀 인연의 고리가 없다. 사건 이전에는 만난 적도 없다. 영화 상영 이후 온갖 전화 등에 시달리고 있는데 억울하다"고 밝혔습니다.
판사가 나쁜 사람일까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한주 판사는 언론에 "피해 학생들에게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히며, "가해자들은 나쁜 사람들이었지만 피해자들이 합의하고 고소취하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친고죄인 청소년보호법의 성추행 조항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었기 때문에, 비록 2심이었지만 합의를 봤다는 점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판결들에 비춰봐도, 그리고 법조문의 정신에 비춰봐도 그럴 법한 해명입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결과는 최악이었을까?
이상합니다. 영화와 달리 재판 과정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해야 될 일을 했습니다. 자신에게 규범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한 것이죠. 그런데도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자유롭게 풀려나는 최악의 사법적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제는 우리 형사 사법 절차의 구조적 결함입니다. 먼저 청소년보호법의 성추행 등이 고소능력이 생긴 지 1년 안에 고소를 해야지 기소가 가능한 '친고죄'였던 점이 문제가 됐습니다. 오래 전에 일어났던 많은 범죄가 기소도 안 된 것은 물론, 검찰이 기소한 부분 가운데도 고소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검찰의 공소 자체가 기각된 사건들이 있었죠.
주범인 교장 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주된 이유도 '친고죄'로 기소된 만큼 피해자와 합의를 본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청소년보호법의 성추행 조항은 이후 개정돼 지난해부터는 고소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변경됐습니다).
두 번째는 성폭력특례법의 장애인 준강간 조항, 이른바 '항거불능' 조항에 대한 법원의 협소한 해석입니다. 검찰은 피고인 중 행정실장 김모씨와 교사 전모씨에 대해서는 친고죄인 청소년보호법의 성추행 조항으로 기소하면서도, 고소기간이 문제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해, '친고죄'가 아닌 장애인 준강간 조항으로도 추가 기소합니다.
장애인 준강간이란 "신체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특례법) 제6조에 따라 피해자 측의 고소가 없이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입니다.
이 조항을 적용하고 보니 '항거불능'이라는 개념이 문제가 됐습니다. 법원은 강간 과정에서 싫다는 의사 표시를 했거나, 평소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이 있다면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므로 이 조항에 근거해서는 가해자의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입니다. 결국 이 조항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가장 끔찍한 장면인 '화장실 성추행 사건'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됩니다. ('항거불능' 조항의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글 한 편을 쓸 생각입니다.)
셋째로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그간의 관대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조두순 사건', 이른바 '나영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끔찍한 아동 성폭행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 전까지,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은 지금에 비해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특히 최근 1심 선고가 내려진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과 비교해봐도 당시 양형은 낮은 편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진실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이 제2차 이라크전의 개전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였습니다. 이 주장은 이후 거짓으로 판명났죠. 사실이 드러난 후, [워싱턴 포스트]의 월터 핀커스 기자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주장에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온 공로로 많은 언론상을 탔습니다.
그러나 핀커스 기자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 안보 분야에서 근무한 많은 공무원들이 "진실한 사람들이며, 매우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고,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과 어울리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최악의 결과가 반드시 몇 사람의 악인 때문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지요.
'도가니' 재판 과정에 참여한 누구도 '악인'이나 '부패한 법조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오래 전부터 정해져있는 자신의 역할을 나름대로 성실히 수행했죠. 다만 그들이 수행한 규범적 역할들이 맛물려 돌아가도 '정의'가 산출되지 않는 맹점, 즉 구조적 결함이 발생하는 지점이 '장애인·청소년 성폭행'이었던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 대한 사법적 절차에 하필이면 결함이 있었다는 것은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것이겠죠. 다만 영화에서처럼 어떤 부패한 '악인들'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된 것은 아닙니다. 이제라도 다시는 '도가니'와 같은 일이 없도록 드러난 문제점들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악인들에게 분노를 터트리고, 부패한 이들을 처단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닙니다. 현실은 그런 방식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진실은 간명한 해결책을 찾기에는 너무 불편합니다.
(첨언: 그렇다면 부패한 법조인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한 영화 '도가니'의 화법은 잘못된 것일까요? 법원과 검찰은 억울한 것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 영화 '도가니'의 사회 고발에서 배워야 할 점은 없을까요?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고치고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 글의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