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관리 '비상'…수출기업 혜택도 크지 않아
"대외악재 많아 당분간 원화 약세 전망"
원·달러 환율이 나흘째 급등하며 1,2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대한 기대가 실망감으로 바뀌면서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당분간 원화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견해다.
수출기업에는 호재일 수 있지만 물가관리에는 비상이 걸렸다.
◇"환율 상승, 금융위기 때보다 더 빠르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29.9원 오른 1,179.8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9월2일(1,180.5원) 이후 1년여만에 최고치로, 현재 원 · 달러 환율은 2008년 9∼10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8년 9월1일 종가 기준으로 1,100원대에 올라선 환율이 1,200원대로 올라선 것은 같은달 30일로 100원 오르는 데 한달 가량 걸렸다.
하지만 이달 14일 1천100원대로 올라선 환율은 불과 6영업일만에 1,2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날 환율 급등은 전날 미 FOMC 회의 결과에 대한 시장의 실망감이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FOMC에서는 시장의 예상대로 경기부양 방안으로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카드를 내놨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단기 국채를 매도해 장기 금리를 낮추는 정책으로, 침체일로에 있는 미 경제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전 세계 금융시장 불안 등 경제전망에 상당한 하방 리스크가 있다"고 진단하면서 금융시장의 두려움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S&P,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앞다퉈 미국과 이탈리아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외환 전문가들은 남아있는 악재가 쌓여 있는 만큼 원화는 당분간 약세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설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포르투갈의 추가 구제금융설, 프랑스 은행의 유동성 부족 우려 등의 요인까지 겹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더구나 자금 확충이 필요한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지난달부터 국내 채권시장에서 대규모로 채권을 팔아치우고 있어 원화 약세의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선물 변지영 연구원은 "원화 약세가 가속화하면 외국인들이 원화 채권 매도를 확대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며 "환율이 1,200원대까지 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역외 달러 매수세가 워낙 강해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최대한 많이 오르면 1,250원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용경색이 유럽에 국한돼 있고 금융위기 학습효과로 은행들이 외화 확보에 만전을 기하는 등 국내 외화유동성도 많이 나아져, 환율 폭등이 지속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됐다.
하나금융연구소 장보형 연구위원은 "2008년말 금융위기 때보다는 외화 유동성이 훨씬 나은 상황이므로 당시와 같은 환율 폭등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물가관리 '비상'…당국개입도 효과없어
환율 급등은 수출기업에 호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대외 상황은 이 같은 기대마저도 무너뜨리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의 경쟁 상대인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 대체로 달러 대비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만의 차별적인 수출경쟁력 제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더구나 환율이 우호적이더라도 해외 수요 위축이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반도체, LCD 등의 가격 급락에서 알 수 있듯 글로벌 수요가 급속하게 위축되고 있어 수출전선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LG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책임연구원은 "내년에도 미국, 유럽 등의 경기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수출 둔화는 내년까지 이어져 월별 수출증가율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 관리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지난달 5%를 넘어선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추석 이후 농산물 수급 안정과 국제유가 하락 등에 힘입어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환율 급등이라는 뜻밖의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농산물 가격 안정 등으로 공급 쪽의 물가 불안요인이 진정된 반면 환율 급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 워싱턴DC에 체류 중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오전 신제윤 1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제금융시장을 면밀히 주시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이 시장에서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19일 15억달러, 20일 25억달러 가량을 원화가치 방어를 위해 쏟아부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환율은 이를 비웃듯 나흘 연속 급등하고 있다.
한 외환딜러는 "정부가 수출경쟁력을 위해 환율 급등을 용인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며 "사실 여부를 떠나 정부가 현재 외환시장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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