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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용직 노동자의 자살…기자의 고민

김수영 기자

입력 : 2011.08.22 09:41|수정 : 2011.10.13 10:30


기자들은 새로운 기사를 발굴해 쓰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매체에서 나온 기사를 보고 추가 취재를 해 보도할 때도 있습니다. 출근해서 보니 비 때문에 일감이 끊겨 일용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계속된 비 때문에 생긴 안타까운 일이었다는 겁니다.

사실 자살 사건은 우리가 잘 모르지만 생각보다 많이 발생합니다. 각각의 사연이 있겠지만 모든 자살 사건이 보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도에는 흐름이 있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야 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는 '시의성'에 부합했습니다. 평상시 일감 없는 일용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보도가 될 가능성이 낮아겠지만 최근 상당 기간 해가 떠 있는 것을 보기 힘들 정도로 비가 많이 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도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일용직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인력소개소 취재를 통해 평소보다 일감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이 마저도 허탕을 치기 일쑤이며  불황에 비까지 겹치면서 그들에게 희망은 사라졌다는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사건에 대한 추가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이번 사건을 조사한 경찰에 확인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도된 내용과는 달리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신원은 51살 신 모씨..이혼한 뒤 오랫동안 혼자 살았고, 따로 사는 아들이 있고, 신문 배달을 했고...'  단편적인 정보들이 쏟아졌지만 고인이 과연 일용직 노동자였는지, 비 때문에 일감이 줄어 고민이 많았는지 정작 필요한 것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서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비슷한 변사 사건은 하루에도 몇번 씩 발생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경찰 입장에서는 타살이냐 자살이냐는 점을 가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타살인 경우엔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를 진행하지만 자살로 결론이 나면 그 이유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이번 경우도 특별히 타살 혐의점이 없다며 자살로 결론 내고 시신을 유족에게 넘긴 상태였습니다. 고인의 사정은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죠. 결국 이를 밝혀내는 것은 기자인 제 몫이 됐습니다.

단서 1. 유서

숨진 신씨가 발견된 방에는 편지지 한 장 분량의 유서가 있었습니다. 아들을 잘 키워준 형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었고 마무리도 제대로 짓지 못한 채 편지는 끝을 맺었습니다. 두서없이 적힌 내용으로 정확히 그가 목숨을 끊은 이유를 추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단서 2. 집주인

신 씨는 집주인에게 발견됐습니다. 상당히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다세대 주택이었습니다.  집주인을 만나기 위해 현장으로 갔습니다. 80세가 넘은 집주인 할머니는 발견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분명 신 씨가 새벽에 신문 배달 일을 했고, 낮에 대부분 시간에는 집에 있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신 씨가 예전에 건축 일을 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전' 일이라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의 신 씨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었습니다. 말수가 없고, 술에 취한 모습이 자주 발견됐다고 합니다. 동네 가게에 라면을 사러 다니는 모습, 신문 배달을 위한 작은 오토바이가 집 앞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원했던 대답은 신 씨가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였고, 잦은 비 때문에 일 구하기가 어려워 힘들어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생각과 현실은 분명 달랐습니다.

신 씨는 20년 넘게 부인과 헤어져 살고 있었고, 아들도 제주도에 있는 형에게 맡긴 채 홀로 살아갔던 그에게는 만성적인 외로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은 맞았습니다. 4개월 전에 신문 배달을 일을 그만두고 그만큼 월세도 밀려 있었습니다.

잦은 비 ⇒ 일감 부족 ⇒ 생활고 ⇒ 자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보도 가치가 있는 '딱 떨어지는' 구조입니다. 정보는 부족했지만 신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로 '잦은 비로 인해 일감이 끊겨 생활고에 시달렸기 때문'으로 몰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보고를 하고, 이 사건을 도입부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쉽게 넣기 좋은 소재지만 분명 생각했던 사실과는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선배와 상의 끝에 인력중개소 상황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도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중요한 도입 사건이 사라졌을 뿐입니다. (결국 그 기사는 다른 기사에 밀려 보도되지는 못했습니다.)

상황을 가정하고 현장에 가면 '현장'은 항상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처음 생각과 비슷하게 상황이 전개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기사 주제도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아예 취재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는 가치 판단이 필요합니다. 다른 방송사에서는 이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또 다수의 아침 신문들이 이를 기사화했습니다. 기사 판단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느냐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 정보들은 현장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오늘도 사건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끊임없이 더 많은 '사실'를 취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