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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러시아 밀착…6자회담 재개 '양날의 칼'

입력 : 2011.08.20 15:17|수정 : 2011.08.22 09:34

러 '중간자'역..비핵화 사전조치 설득 여부 관건
'6자 조속재개' 원론만 확인 땐 신냉전구도 재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일 러시아 방문길에 오르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가 출렁이고 있다.

이번 방러는 9년 만에 이뤄지는 북러 정상교류라는 양자외교 차원을 넘어 '북러 밀착'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해냄으로써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돌출변수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구도로 전개돼온 북핵 6자회담 재개 흐름도 러시아 변수의 개입으로 새로운 환경과 구도에 직면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행(行)은 현 한반도 정세에서 다목적 함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단 북러 양국관계의 '정상화'라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는 200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한 이후 9년만의 일이다.

접경국가임에도 10년 가깝게 정상 간 대화가 부재하면서 양국관계는 정치경제적으로 '소원'했다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 시각이다.

북한의 대(對) 중국 정치경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양국이 추진하는 각종 협력과 교류사업은 실질적 진전을 보지 못했고 러시아는 한반도 정세운용 과정에서 '주변부'를 맴도는 처지에 놓였었다.

양국의 이 같은 정상화는 동북아 정세대응과 경제적 실익확보 측면에서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교묘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당장 북한으로서는 내년 강성대국 건설을 앞두고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공고화와 경제지원 확보가 초미의 과제다.

중국 외에는 '우군'을 찾기 힘든 북한으로서는 주변 국가, 특히 접경국인 러시아와의 관계정상화가 필수적 현안일 수밖에 없다.

이는 한반도 정세운용 과정에서 '전략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긴요하다.

러시아와의 관계정상화는 대중 편향구도를 수정ㆍ견제할 수 있는 카드라는 점에서 북한에 보다 유리한 협상환경을 조성하고 외교적으로도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수단이다.

러시아로서는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는 발판을 확보하는 정치안보적 이익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동안 남북미중 중심으로 진행돼온 6자회담 재개 교섭과정에서 은근히 소외당했던 러시아로서는 이번 북러 정상회동을 계기로 제한적이나마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과 입김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후 경제협력에 따른 잠재가치도 적지 않다.

러시아는 '숙원사업'인 극동지역 개발과 함께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는데 의미를 둘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전략적 이해가 복잡하게 맞물린 북러 간 밀착흐름은 동북아 외교지형과 북핵 6자회담 재개 흐름에 적지않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 논의를 둘러싼 외교구도에 새판짜기가 예상된다.

북한이 과도한 '대중국 쏠림현상'을 견제하면서 북중, 북러관계의 균형점을 회복하는 의미있는 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시각이다.

앞으로 북러 간 밀착도에 따라서는 한반도 정세현안 대응과정에서 중국이 패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대 관전포인트는 러시아 변수의 등장으로 미중을 중심으로 전개돼온 북핵 6자회담 재개 흐름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이다.


외교가에서는 러시아의 적극적 개입이 6자회담 재개 흐름에 있어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한미일 대 북중의 외교적 대치구도 속에서 '중간자'의 역할을 해왔다.

북중과 보조를 맞춰 '조건없는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주장하면서도 한미일의 입장을 두둔하며 북한을 향해 '비핵화 사전조치'를 촉구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일종의 '등거리' 외교를 꾀해온 셈이다.

이에 따라 이번 북러 정상외교를 계기로 러시아가 어느 쪽으로 튈지 불확실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우선 러시아가 모종의 역할을 꾀할 경우 6자회담 재개 흐름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긍정론이 나온다.

러시아가 대북 식량ㆍ경제지원을 고리로 비핵화 사전조치를 요구하며 북한의 태도변화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한미일의 요구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의 영변 핵시설 복귀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 관련시설에 대한 사찰을 촉구할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자세를 취할 경우 6자회담 재개 흐름은 상당한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흐름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한미일의 입장을 반영하기 보다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건없는 6자회담 조기 재개' 쪽으로 방향을 돌릴 소지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로서는 극동지역 개발과 양국 간 경협사업이 워낙 큰 숙원사업인 터라 북한이 강도 높은 버티기에 나설 경우 태도를 바꿀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중국과 함께 러시아를 '또 다른 우군'으로 만들어 6자회담 재개의 조건과 형식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 총력전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러시아의 관심이 큰 남북미 가스관 연결사업을 '볼모'로 북한이 역으로 설득에 나설 경우 러시아가 설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경우 '북한의 비핵화 선행조치'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한미일과 '조건없는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주장하는 북중러 간 신 냉전구도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6자회담 재개 흐름을 또다시 난항을 빠뜨리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다.

이런 맥락 속에서 뉴욕 북미대화 이후 상황을 탐색해온 남북미중으로서는 러시아의 개입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남북-북미대화 '2라운드'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북러가 이번 정상회동을 계기로 어느 정도의 밀착도를 보여주느냐가 하반기 한반도 정세의 기상도에 영향을 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