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국민이 마음놓고 생활할 수 있도록 치안을 확보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치안을 포기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멕시코입니다.
그동안 취재파일을 통해 중남미 마약 범죄와 관련된 소식들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마약으로 생지옥이 된 도시'라는 글을 통해 마약 범죄의 상징이 되어버린 멕시코의 '시우다드 후아레즈'란 도시에 대해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와 관련해 또 외신들이 들어왔습니다. 멕시코의 한 도시에서 마약 범죄단체의 폭력에 겁을 먹은 나머지 경찰관들이 모두 사직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Chihuahua)에 있는 아센시온(Ascension)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먼저 아센시온이란 도시의 위치부터 보시겠습니다.
위에 연한 초록색 바탕 멕시코 지도의 북쪽으로, 파란 동그라미 안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 '아센시온' 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 때문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연결되는 주요 마약 통로 가운데 한 곳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센시온에서는 '시날로아'라는 유명한 마약 범죄조직이 마약 밀매 주도권을 쥐고, 도시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지난 수 주 동안 아센시온에서는 마약 조직이 경찰관들을 노리고 범죄를 저질러 왔는데, 최근 들어 경찰관 2명이 마약 조직 갱단원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아센시온 경찰관 26명이 겁을 먹고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 것입니다. 아센시온은 현재 연방 경찰과 군인들이 동원돼 도시 순찰을 벌이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아센시온이 속해있는 치와와주는 위에서 언급한 '시우다드 후아레즈'도 위치해있어 마약과 관련된 온갖 범죄가 빈발하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아래 지도에 노란색 동그라미 안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문제의 '시우다드 후아레즈'입니다. 아센시온보다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멕시코 경찰들이 마약 범죄조직의 협박과 위협에 굴복해서 집단으로 물러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멕시코 북부 누에바 레온주의 로스 라모네스시에서 마약 조직원들이 경찰서를 습격해 경찰서 건물과 순찰차들을 파손한 이후 경찰관 14명이 모두 사직한 일도 있습니다.
그에 앞서 지난 2009년에는 역시 치와와주에 있는 '비야 아우마다(Villa Ahumada)'라는 도시에서도 마약 조직원들로부터 일부 경찰관들이 공격을 받은 뒤, 경찰관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원 사임했다고 합니다.
<마약 범죄조직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경찰서 건물>
경찰들이 이렇게 집단으로 사직하고 있는 것은 경찰이 마약 범죄 조직에 비해 오히려 무기와 인원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약 갱단에 맞서 싸워봐야 오히려 경찰관들이 더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보니, 갱단으로부터 공격이나 협박을 받을 경우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직무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마약 조직이 활개치는 멕시코 북부 지역에서는 경찰관들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떠나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고 있고, 일부 도시들의 경우 아예 경찰관이 한 명도 없는 치안공백 상태가 벌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 여성의 얼굴 기억 나시는지요?
지난해 10월 멕시코 북부 '프라세디스 지 게레로(이하 게레로)'라는 도시에서 자원해서 경찰서장이 됐다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마리솔 바예스 가르시아'라는 여성입니다.
당시 게레로에서는 2009년 전임 서장이 마약 조직에 피살된 이후, 살해 위협 때문에 아무도 서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아 서장 자리가 비어 있었고, 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한 20살의 가르시아가 자신이 그 일을 맡겠다고 용감하게 자원해 서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런데 가르시아는 불과 여섯 달도 안 된 지난 3월 초 휴가를 핑계로 미국으로 사실상 달아났습니다. 가르시아는 이후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살해 협박 때문에 망명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미국에 망명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렇듯 가뜩이나 멕시코의 치안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급기야 한국 대기업 직원이 멕시코 수도 한복판에서 괴한들의 총격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은 아마도 인터넷이나 주요 매체를 통해 접하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지 시간으로 5일 저녁 멕시코시티 도심 주거지인 '폴랑코'에서 모 한국 대기업 현지 법인에 근무하는 30대 한국인 남성이 괴한 3명이 쏜 총탄 13발 가운데 6발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범인들이 체포되지 않아서 아직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사건이 발생한 폴랑코 지역이 멕시코시티에서도 부촌으로 꼽히고 있고 치안도 비교적 안전한 거주지역으로 알려져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플랑코에는 우리 동포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 한 복판의 치안이 이 정도이니, 마약 조직이 활개치는 멕시코 북부 지역의 치안 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멕시코가 마약 범죄 조직 때문에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우려에 대해 멕시코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은 멕시코 정부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2006년 12월 칼데론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만 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의 외교 전문에서 멕시코가 '실패한 국가'로 언급됐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멕시코가 정말로 '실패한 국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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