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우면산 산사태 주민이 더 큰 피해 막았다

입력 : 2011.08.04 08:24

첫날 밀려든 1.5m 두께 토사 아파트 하중 부담…건축·토목 종사자 주민 아이디어 짜내 긴급조치


지난달 27일 우면산 산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래미안 방배아트힐 아파트에서 관계당국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 주민들이 직접 나서 더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을 슬기롭게 넘긴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엄청난 양의 토사 무게가 자칫 아파트 구조물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신속하게 해결책을 짜냈다.

래미안 방배아트힐 주민대책위에서 복구팀장을 맡은 건축설계사 이모(50)씨는 서울시나 자치구가 속수무책인 가운데 주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4일 전했다.

이씨는 "나만 일한 게 아니다"며 실명 공개는 극구 사양했다.

27일 오전 남부순환로를 넘어 래미안 방배아트힐을 덮친 산사태로 이곳에서만 3명이 숨졌다.

단지는 온통 뻘밭으로 변했다.

이씨는 "토사가 단지에서 지대가 낮은 중앙광장에 모이면서 1.5m 두께로 쌓였다. 그대로 두면 위험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중앙광장 밑은 복층 구조로 된 지하주차장.

토사 제거가 늦어지면 빗물을 머금은 토사의 엄청난 무게가 주변 구조물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하주차장은 준공 초기인 2005년 구조물 문제로 보수공사까지 한 일이 있어 우려를 더했다.

산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27일 오후 누가 어디서 모이자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건설이나 토목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위험이 커지기 전에 광장의 토사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토사가 물을 많이 머금어 트럭으로는 퍼 나를 수가 없었다.

중장비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군인과 경찰, 소방대는 남부순환로 긴급복구에 투입돼 여력이 없었고 현장에 파견 나온 담당 공무원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많은 토사를 어느 세월에 다 치워"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마냥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해결책 모색에 직접 나섰다.

토사를 퍼 나를 수 없으니 소형 건설장비를 이용해 광장 바깥으로 밀어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한 주민은 단지 옆에 대형 우수관(雨水管)이 지난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맨홀 뚜껑을 여니 우수관에는 우면산에서 내려온 흙물이 천둥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형 스키드로더 2대를 시공사와 구청에 수소문해 긴급 투입했다.

장비 두 대는 이틀간 쉴 틈 없이 물과 토사를 우수관으로 밀어 넣었다.

복구 사흘째인 29일 광장이 바닥을 드러냈다.

군인과 경찰, 소방대가 남부순환로 작업을 마치고 아파트 복구작업에 대대적으로 투입됐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본격화됐다.

원상복구는 아직 요원하지만 3일 오후에는 단지 내 도로와 지하주차장의 토사 제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주민 차량이 조금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사고 직후 휴가를 내고 여드레 동안 아침 7시부터 밤 1시까지 복구 현장을 지켰다. 그냥 주민일 뿐이지만 평생 살지도 모르는 내 집이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함께 한 주민 모두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