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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침출수, 바다로 '콸콸'

김형주 기자

입력 : 2011.07.23 13:56|수정 : 2011.07.23 13:56

"덥더라도 현장에 좀 나갑시다"


지난주 월요일 머드 축제가 한창인 충남 보령을 다녀왔습니다. 

보령은 듣던대로 바다와 갯벌, 그리고 아름다운 해송 숲이 어울어진 아름다운  지역이더군요.

이 보령 남당항에서 홍성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다보면 '홍보방조제'가 나옵니다. 

홍성과 보령의 경계에서 바다를 막았다 하여 홍보방조제죠.

방조제 안쪽은 물을 막아놓아 홍성호가 돼 있고, 바깥쪽은 보령 앞바다입니다.

장마철 호수 수위가 높아지면 수시로 수문을 열어 호숫물이 바다쪽으로 흘러가게 되죠.

제가 서울에서 제보를 받은 곳은 바로 이 홍보방조제 안쪽 호숫가였습니다.

호숫가변에서 열발자국 정도만 안쪽으로 걸어가면 자갈사면엔 어울리지 않게도 지난 연말 돼지 2만5천마리를 살처분한 구제역 매몰지가 나오는데, 이 매몰지에서 호수쪽으로 향한 수상한 주름관이 있다는 제보였습니다.

실제 가보니  제보자 말대로 주름관이 있었고, 역겨운 악취의 썩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오수에는 마치 장조림 보관할 때 하얀 기름이 뜨듯,  기름이 붕붕 떠 있었고요, 날파리들이 수면에 앉아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주름관의 정체는 과연 뭘까? 마침 취재진의 방문에 맞춰 매몰지 관리를 맡은 보령시 관계자들이 현장에 나와 있었습니다. 

기자 : "이거 침출수를 바다로 무단 방류하고 계시는거 아니에요?"

보령시 관계자 "...워낙에 비가 많이 오다보니 조금 샜나봐요. 임시방편으로 한건데..."

현장에 나와있던 공무원은 무단 방류가 맞는지 명확하게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침출수가 새어나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는 듯 했습니다. 

지난 연말 급하게 자갈밭에 돼지를 매몰하다보니, 이번 장마철에 속수무책으로 침출수가 새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언론취재에 맞춰 같이 온 인부들과 포크레인을 동원해 매몰지 이설작업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대량의 침출수는 방조제 안 호수를 통해 이미 한참이나 보령 앞바다로  흘러나간 뒤였습니다.  주변 해변가에는 굴 양식장과 횟집이 즐비한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뒤 매몰지 관리책임이 있는 농식품부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전화를 받은 담당 공무원은 이미 취재진이 보령 매몰지에 다녀간 사실을 알더군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반복됐습니다.

담당 공무원 :  "그거 침출수가 아니에요. 침출수를 무단방류한 게 아니고, 빗물을 빼기 위해 빗물관을 설치한거에요."

두세번쯤 같은 내용을 듣다 참을 수 없어 한마디 던져봤습니다.

기자  : "누가 빗물이라고 하던가요? 혹시 현장에 나가 확인해보셨나요?"

담당 공무원 :  "현장에 나가진 않았지만 보령시가 사진을 보내왔거든요."

기자  : "...그럼 빗물인지 침출수인지 HD 화질의 뉴스 화면을 보고 확인하시면 되겠네요.

담당 공무원 :  "사실대로 보도를 내줘야 해요. 침출수가 아니라 빗물이에요."

빗물이 흘러나온 거라면, 왜 악취가 진동하고, 물 색깔이 검고, 기름이 둥둥 뜨고, 날파리가 고이는지, 이 공무원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믿고 싶은 게 사실인 양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대로 취재해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이 뉴스에 대해 보령시의 매몰지 관리자는 기자의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남기며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더군요.

'지난 겨울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지난 연말 구제역을 막고자 엄동설한에 얼마나 고생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는 순직하기도 했는데, 공무원들이 이렇게까지 노력을 했는데 무조건  비난만 하면 어떻게 하냐는 항의였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분의 항의가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이분들은 지난 겨울 현장에 나와 돼지를 묻는 고된 작업을 벌였고, 또 뉴스 보도 이후엔 살인적인 무더위속에서 악취를 참고 매몰지를 이설하는 작업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현장에 나오지도 않고 무조건 침출수를 빗물이라고 우기던 농식품부는 방송 이후 일언반구의 변명도 없이 조용했습니다. 심정적으로는 바로 이런 중앙정부의 게으른 탁상행정이야말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자들도 현장에 나가지 않고 기자실에서만 기사를 쓰다간 이런 행태를 똑같이 저지르기 십상입니다.  제발 좀 ....조금 덥더라도 현장에 나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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