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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제대.
30년간 공무원 근무.
그리고 아들이 미술 공부하는 걸 반대한 아버지’.
그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누드 모델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나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은 아버지의 인생을 미화시킬 여지조차 주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이 시대를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작가의 눈에는 영웅이자 시대의 한 켠에 묻힌 아버지의 이름 없음을 보는 이의 눈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이름 없는 영웅은 아들의 미술 공부를 위해 벗은 몸으로 서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비싼 모델이 되어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버지의 모습이 모델이지만 그 안에 상징이 숨어 있는 것과 반대로, 실재하지 않는 형상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역시 사실적인 표현이 강한 힘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 힘 은 모호한 형상들보다 더 강하게 뇌리 속으로 파고듭니다.
식물 인간은 단어 그대로 식물과 인간이 합성되어 있습니다. 무기력한 환자의 모습인 식물 인간의 뜻은 무기력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혹은 결혼 전이라면, 아이가 없었다면’ 용기를 내었으리라 다짐하는 우리 현대인들은 식물 인간일지 모릅니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 같은 모습이 보는 이에게 슬픔을 떠올립니다.
사실적인 형태와 그렇지 않은 부분의 조합도 있습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하는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의족을 착용한 사람인데 의족이 오히려 피부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엄지발가락은 황금색의 금속입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모두 사실은 아니라고 설명하는 듯 합니다.
[김진섭/성곡미술관 큐레이터 :모든 것을 바라보았을 때 정답은 없다라는 거죠. 그 안에서 내가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떤 한 부분이 정답이 아니라 결국에는 각자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실험실 안의 흰쥐가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실험실 속에서 온갖 잔인한 실험의 대상이 되곤 하는 쥐. 꼬리를 달고 갇혀있는 사람들은 우리 스스로 실험용 쥐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못살게 구는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잘려진 손들이 커다란 날개가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멋있는 날개의 형상들이 가까이에서 보면 끔찍한 모습으로 돌변합니다. 날아오르는 것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같지만 사실이 아닌 형태. 영웅이 아니지만 영웅인 아버지.
삶이 하나의 허구처럼 느껴진다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숨겨진 아픔을 이해할 때입니다.
취재협조 - 성곡미술관, 최수앙 개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