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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 중동엔 '안달', 북한엔 느긋?

권영인 기자

입력 : 2011.05.11 17:21|수정 : 2011.05.11 17:57


중동과 한반도. 모두 미국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곳이다. 그만큼 미국이 오랜 기간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시에 최근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지역이다.

튀니지발 재스민 혁명은 중동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반도는 북핵을 놓고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도 고민이다. 어느 하나 해법을 쉽게 찾기 어려워 보인다.

1. 5.16과 6월 항쟁 기로에선 이집트



이집트는 미국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나라다. 중동 전체가 중요한 지역이지만, 이집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미국의 중동 정책에 있어서 핵심 국가다. 이집트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떠받쳐주는 지지대고, 중동 전체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확산을 막는 저지선이다. 세계 물류의 중심 허브인 수에즈 운하의 안전판이기도 하다.

그런 이집트가 무너졌다. 무바라크가 쫓겨났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수십 년간 권력을 장악해 온 군부세력은 아직 굳건하다. 우리의 4.19 혁명이 떠오른다. 그 때의 우리처럼 군부가 5.16과 같은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군부에게 다시 권력을 넘겨주기 보다는, 민주적이면서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앉히고 싶은 게 미국의 마음이다. 우리의 5.16과 5.18 사태와 같은 오류를 건너뛰고 곧바로 6월 항쟁으로 들어선 민주 정부를 이집트에 뿌리 내리게 하는 게 미국의 욕심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압축적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의 사례를 이집트에 접목시키기가 정말 어렵다. 그것도 더욱더 압축시켜 안착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두면 군부든 개혁 세력이든 통제 불능 세력이 권력을 장악할지 모른다.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집트의 조기 안정화는 더욱 중요해졌다.

2. 사우디도 불안하다



재스민 혁명은 아라비아 반도를 이미 강타해 예멘과 시리아에 연일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주목하는 지역은 따로 있다. 바레인이다. 지난 달 바레인에서도 재스민 혁명 바람이 잠시 거세게 불었다. 짧게. 그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내정간섭 비난도 무시하고 군대를 파견했다. 그만큼 급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재스민 혁명의 영향이 적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란 게 이유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치적으로 국민들의 불만은 점점 한계치에 도달하고 있다고 한다. 왕정 때문이다.

선왕이 남긴 유언에 따라 지금 사우디는 선왕의 아들들이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선왕의 아들이 전부 왕좌에 오를 때까지 손자들은 왕위에 오를 수 없게 돼 있다. 그렇다보니 권력 상층부는 대부분 70세가 넘었다. 어른을 폄하하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오랜 기간 고여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사우디에도 중동 어느 나라 못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우디가 무너지면 중동은 그야말로 혼돈에 빠지게 된다. 누가 차기 권력을 갖느냐에 따라 미국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동 지역의 가장 큰 우방국을 잃는 것에서부터 안정적인 원유 공급처가 사라지는 것까지 정치경제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우디 바로 턱밑에 있는 바레인의 재스민 혁명을 미국이 주의깊에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사우디가 군대를 파견해도 미국이 묵인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스민 혁명이 바레인에서만큼은 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지금 미국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3. 북한은?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은 어떨까.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기대와 달리 공화당인 부시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대부분 원용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도 있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비핵화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사과를 받아내려는 한국 정부처럼 완고하지는 않지만, 북핵을 중심에 둔 북한 문제를 조급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 북한에게 핵무기를 제조할 시간만 더 벌어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미 50kg 이상의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데 몇 개 분량을 더 확보한다고 해서 현상이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판단이다.

한국 정부 고위관계자도 북한이 핵무기 확보를 추진하면서 한국에서 제공되는 3억 달러를 매년 잃고 있는 셈이라며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농축우라늄은 걱정스럽긴 하지만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기 제조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문제삼고 싶지만, 중국 때문에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도발은 없을 것이라는 역설적인 안심도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핵이 확산되지만 않는다면 시급한 현안이 아니다. 핵확산만 막을 수 있다면 북한이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 미국 생각이다.

한반도와 중동을 바라보는 미국 정책의 온도차는 이런 판단 아래서 발생한다. 미국을 조급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곳은 중동이다. 더군다나 내년 미국 대권을 노리고 있는 후보자들에겐 북한은 많은 표를 가져올 수 있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 중동정책이 한반도 정책보다 따끈따끈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빈 라덴이 사살되면서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는 미국은 중동이 더욱더 신경 쓰인다. 그래서일까. 클린턴 국무장관은 어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결심을 내년 3월말 핵 안보정상회의 때까지 보여 달라는 ‘통큰’ 발언도 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가 예상보다 더 지루한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더 커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