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기관 무조건적 배제는 정치권 낙하산 부를 우려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금감원 출신 감사의 부적절한 눈감아주기, 부패 연루 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 속에 금감원이 후폭풍을 맞고 있다. 그동안 무사안일주의 속에서 전문성이란 미명하에 금융권과 끈적끈적한 유착을 이어왔던 금감원은 사실 할말이 없다. 이 참에 환부를 도려내고 시스템의 대폭 개선이 불가피하다. 사실 그렇지 않고서 금감원은 감독기능을 수행할 면이 서질 않을 정도로 위신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이후 신한은행 감사로 내정된 이석근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사의를 밝혔다. 이 전 부원장보는 아직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제한 여부 확인 심사 절차가 남아있지만, 감사 선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인만큼 사실상 자진해서 물러난 셈이다.
주주총회 시즌을 맞은 보험, 카드, 증권사 감사 가운데 이번에 임기가 만료되는 금감원 출신 인사의 상당수는 재선임되지 못하거나 스스로 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아직 임기가 남은 금감원 출신 감사마저 자리를 내놓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금융권의 금감원 출신 감사 영입 작전이 올스톱됐다.
그럼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금감원이 그동안 내세웠던 '전문성'이라는 부분은 부정부패 때문에 지금 어떻게 얘기 꺼낼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분명히 그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관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금감원 출신의 낙하산 감사만 무차별적으로 금지하게 되면 결국은 감사원이나 검찰, 한국은행, 정치권의 감사자리만 늘리게 될 것은 자명하다. 즉 일벌백계 하되 앞으로 금융회사 감사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지 어떤 기관은 절대 안 되고 어떤 기관은 된다는 식의 접근으론 사태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실제 국회정무위 정옥임 의원에 따르면 2002년부터 올해까지 영업정지된 31개 저축은행 가운데 금감원과 한은 출신이 포진한 곳이 10개로 집계됐다. 2005년 영업정지된 인베스트 저축은행은 금감원(옛 은감원) 출신이 대표이사를 맡고 한은 출신이 최대주주로 있었고, 2006년 영업정지된 좋은 저축은행은 금감원 출신이 대표이사, 한은 출신이 감사였다. 1998년 통합 전까지만해도 한 몸이었던 금감원과 한은 출신이 대거 금융기관으로 재취업해 전문성을 살리기보다 오히려 부실로 이어지게 된 것.
정 의원은 "저축은행 낙하산 인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곳이 금감원과 한은이지만 기재부, 금융위,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관련 정부 부처와 금융공기업 출신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너나 없이 자리를 나눠갖는 행태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맞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오래 공생관계에 있게 되면 인지상정에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유혹을 느끼는 인간의 완전치 못한 '나약함' 을 시스템적으로 걸러내고 예방할 수 있어야 수업료를 비싸게 치렀지만 그래도 이번 사태로 뭔가 얻은 게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금융권에서는 누구를 감사로 영입해야 하나 눈치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항상 낙하산으로 감사를 받다보니 찍어주는 대로 영입만 하면 됐었는데, 갑자기 일시적으로 자율이 주어지니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적임자 물색에 일대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권 말기 챙겨줘야 할 남은 복수의 사람들을 감사로 대거 추천한다는 소문도 설득력있게 들려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반사이익을 얻는 다른 기관에서 이참에 감사자리를 노리고 들어오면 더 곤란한 일들이 많이 생길 가능성이 커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어디 출신은 되고 어디출신은 안 된다는 접근이 아니라, 어떤 자격요건을 갖춘 전문성이 검증된 사람에게 감사 자격을 주고, 만일 감사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부정에 연루되거나 부정을 눈감아주는 사실이 발각될 경우 엄히 다스리는 방향으로, 이 기회에 감사 제도를 비롯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기능을 전반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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