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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자연을 그리는 사람

공진구

입력 : 2011.05.03 10:37|수정 : 2011.05.03 10:46

미술전시/ 김종학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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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작가는 처음 서양의 영향을 받은 추상화를 그렸다. 개념과 이념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던 한국미술의 고민들. 형태가 파괴되었다고 해서 엥포르멜(informel) 미술이라고 불리던 형식이다.

하지만 작가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점점 형태를 되살렸다.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에 상심하고, 개념만 살아있는 미술에 지친 화가 김종학은 설악산으로 들어간다. TV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시골로 도망갔다가 그 곳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다는 스토리 처럼, 화가는 자연 속에서 진실한 사랑에 눈을 뜬다. 화가가 원하고 그리고 싶었던 것은 개념이나 이념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김종학/ 화가 : 가정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아들 딸 남기고 설악산에 들어갈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귀양살이 처럼 들어갔죠.]

당시 꽃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이발소 그림이나 그린다고 폄하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하지만 자연을 그리다 위로를 받으며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화가는 생각한다.

[김종학/ 화가 : 가정 사정으로 설악산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방황하고 그러다가, 봄이 오면서 설악산 들꽃이 필 때 야생화를 보면서 ‘아! 나는 이걸 좀 그려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렸던 것이 봄에는 봄을 그리고, 여름에는 여름을 그리고, 가을에는 가을을 그리고, 겨울에는 겨울을 그리는 사계절 작가가 되었죠.]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자연의 생명력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아니고 꽃을 정교하게 그린 예쁘장함도 없다. 오히려 작가의 정서를 거치고 나와 또다른 생명을 받았다. 외롭고 쓸쓸한 겨울풍경은 깊은 산속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작가의 쓸쓸한 정서가 보이는 듯하다. 계절이 바뀌고 야생화가 여기저기 피자 작가의 화폭 안으로 터질 듯한 색채감을 가진 채 들어왔다.

[김종학/ 화가 : 자연이 나를 치유도 했고, 또 여인처럼 위로도 했고 스승처럼 가르쳐주기도 했죠.]

시간이 흘러 다시 가정을 꾸린 작가의 그림은 또 변했다. 마음 가는대로 그린 그림은 작가의 마음이자 자연의 모습이 되었다. 생명이 넘치는 꽃과 풀과 새들은 그림 안에서 자연이 된다. 마치 꽉 차있는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설악'은 작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도망간 '그 곳'에서 진실한 자기의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 자연이 가지는 생명의 힘은 작품의 크기도 커지게 했다. 작은 틀 속에 가두기엔 자연이 너무 크다. 꽃그림은 여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김종학 화백의 작품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든다. 굵은 선과 강렬한 색채, 한없는 고독 속에서 피어난 야생화는 강인하며 남성적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로 가면 스러져가는 풀과 나무들이 도리어 우리를 애처롭게 쳐다본다. 자연의 치유를 경험해서 인지 서정적인 슬픔 속에서 죽어가는 꽃도 아름다워 보인다. 눈 덮힌 설악은 생명의 힘이 숨어 있는 듯 조형미가 두드러진다. 폴 세잔(Cezanne)의 말을 빌리자면 '자연은 사전 그 자체이다.' 자연 속에는 인간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온갖 재료들이 숨어 있다.

처음 꽃그림을 세상에 내 놓았을 때 '김종학이 타락했다'고 했던 이도 있었다. 하지만 추상과 구상의 차이 자체가 별 무게감 없는 우리 관람객들은 작가의 마음과 자연이 강렬하게 엉켜 있는 그림이 즐겁기만 하다.

취재협조 - 국립현대미술관 '김종학 회고전'

(전시기획 이순령 국립현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