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강원의 상징인 '오대쌀'. 오대산을 본 따 이름 붙여진 이 품종은 강원도의 대표 브랜드 쌀로 인정받으면서 국민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 쌀 생산량이 급격히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내기철을 앞두고 오대 볍씨에 싹이 잘 안 트는 '발아 지연' 현상이 강원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8일 인제군 북면의 월학3리에 취재를 갔습니다. 다음 달 본격 모내기철을 앞두고 농사에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모판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야 할 모가 듬성듬성 나 있었습니다. 정부가 보급한 오대 볍씨를 발아시켜 지난 4월12일 파종했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싹이 잘 올라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최종권 씨는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모판을 갈아엎고 다시 볍씨를 파종해야 할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모내기는 코앞인데 모가 고르지 않고 듬성듬성 난 싹을 심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인근의 또 다른 농가도 역시 정부 볍씨를 버리고 이웃 농가에서 수확한 오대 볍씨를 얻어다가 다시 파종하기도 했습니다. 월학3리에만 37농가가 농협 등에서 볍씨를 구해 다시 파종했다는 게 이 마을 이장인 박청운 씨의 증언입니다. 인제군 농업기술센터측도 발아 실험을 해본 결과 발아가 더디고 발아 속도가 고르지 않아 볍씨 건조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비단 인제군만의 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성과 양양, 양구, 강릉 등 강원 영동 지역에서 오대 볍씨의 발아 지연 현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종자를 보급한 국립종자원에 따르면 강원도 일대 165농가가 이런 발아 지연을 신고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오대쌀 최대 생산지인 철원의 경우 이런 현상이 많지 않았지만 문제는 5건의 신고 가운데 3건이 정부가 보급한 볍씨로 파종한 것이었습니다. 국립종자원 강원지원은 지난해 채종한 오대 볍씨를 보급하기 전에 발아실험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히려 농민들이 파종을 할 때 날씨가 전년보다 쌀쌀했고 발아를 시켜서 싹을 틔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등 발아 지연 문제를 농민과 날씨 탓으로 돌리려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농민의 단순 실수라고 하기에는 발아 지연 현상이 강원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대 볍씨의 발아지연 현상에 대해 국립종자원이 종자를 개발한 농촌진흥청에 원인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현재 온도에 따라 발아 실험을 하고 있지만 정부가 보급한 볍씨에서 '수발아'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수발아란 수확하기 전에 이삭 속에서 싹이 트는 것으로 이 상태로 수확해서 건조하면 쌀이 활력을 잃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대 볍씨를 까보니 쌀 눈에 싹이 나 있는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쌀 수확기에 계속 태풍과 비가 오는 등 일기가 좋지 않아 이런 일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국립종자원이 이런 점 등을 고려해서 올해는 볍씨를 파종할 때 날씨와 파종 시기 등을 고려해 날짜를 늦추든지 앞당기든지 농가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줬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날씨 변화에 따라 기존의 농사법만으로는 모내기를 할 수 없다는 점도 농가들에게 알렸어야 합니다.
정부가 올해 강원도 농가에 보급한 오대 볍씨는 820여 톤. 이 가운데 얼마나 불량 볍씨가 들어 있는지 철저히 분석하고 검증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볍씨는 단순한 종자가 아닌 우리의 주요 식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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