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국에서는 김연아 선수의 복귀 무대가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지만, 유럽에서는 영국 왕실의 결혼식이 단연 최고의 관심사였습니다. 故다이애나 이후 30년 만에 맞는 ‘세기의 결혼’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이애나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반듯하게 자란 그 아들이 결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된 것 같습니다.
윌리엄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답게 전세계 20억 명이 지켜봄으로써 단일 사안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최대 방송인 TF1과 공영방송인 France2가 결혼식 전 과정을 생중계했습니다. 심지어 지구 반대편인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으니까, 그 관심도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관심에 부응하듯 결혼식은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로 연출됐습니다. 1,000년이 넘은 엄숙한 대성당과 110년 된 마차를 타고 벌이는 행진은 마치 어릴 적 읽은 동화를 현실로 옮긴 것 같았습니다. 결혼식 행사의 백미인 버킹엄궁 발코니 키스 장면을 두 번이나 연출하거나, ‘방금 결혼했다’는 번호판에 풍선을 매단 스포츠카를 직접 운전한 윌리엄 왕자 부부는 결혼식 드라마의 훌륭한 주연이었습니다. 결국 결혼식 전체를 하나의 드라마처럼 구성했던 영국은 흥행에서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속은 어떨까요? 이번 결혼식을 보기 위해 60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런던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 묵으려면 최소한 1인당 500파운드 이상은 써야 하고, 갖가지 기념품 판매, 외국 방송사들에 대한 중계권 수익 등을 모두 포함하면 우리 돈 1조 7천억 원 정도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했기 때문에, 제조업과 금융업 부문의 손실은 10조 7천억 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결국 경기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기는커녕 엄청난 규모의 손실만 본 셈이죠.
그렇지만 이런 산술적 계산보다 내용적으로는 얻은 게 많다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영국 왕실은 처음부터 결혼식을 통해 영국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가장 위엄있고 화려한 결혼식을 전세계에 보여줘서 영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은 사실 그 동안 노쇠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번 결혼식을 계기로 전통과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로 업그레이드된 측면이 있습니다. 더구나 내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과 런던 올림픽 개최는 이런 영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고 흥행 실적을 거둔 결혼식을 치르며 영국 왕실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생겼습니다. 우선 좋은 소식은 왕실 제도 폐지 논란이 쑥 들어간 것입니다. Mori라는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민의 75%가 왕실 제도의 유지를 원하고 있고, 18% 만이 폐지를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84%는 앞으로 10년 동안 왕실 제도는 굳건히 유지될 것으로 대다 봤고, 56%는 앞으로 50년 뒤까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왕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윌리엄 왕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前총리가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결국 윌리엄 왕자의 인기가 더 높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죠.
반면에 한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왕위계승 서열 논란입니다. 영국 헌법에 따라 서열 1위는 당연히 윌리엄의 아버지 찰스입니다. 윌리엄은 2위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 85세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할 경우,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에 대해 영국민의 46%가 찰스 대신 윌리엄이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원래 순위대로 찰스가 물려받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40%에 불과했습니다. 찰스가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38%인데 반해, 윌리엄이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의 69%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은 헌법에 정해져 있는데, 이를 바꾸는 과정에서의 혼란은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잘 보여집니다. 1936년의 에드워드 8세가 미국 출신의 이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동생인 조지 6세에게 물려줬던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영국민들 누구도 그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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