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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이 한일관계에 다시 찬물을 끼얹고 있는 가운데 청주 도심 한복판에서 땅속에 묻혀있던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드러났습니다.
청주읍성이 일제에 의해 하수관 석재로 전락했던 현장, 조상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상가 신축에 들어간 청주 옛 남궁병원 터 문화재 시굴조사 현장입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 기왓 조각과 조선시대 우물까지 청주읍성의 오랜 흔적들이 한꺼번에 출토됐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석재 하수관입니다.
일제는 한반도 강점후 청주읍성을 해체하고 그 성돌을 하수관 석재로 사용했는데 그 실물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청주읍성 성돌이 이렇게 집중적으로 출토된건 처음입니다.
[성돌을 모아서 하수도를 만들었다. 정확하게 동서축을 맞춘걸 보면 광범위하게 묻혀있을 것.]
1910년 청주원도심 최초의 지적도입니다.
발굴현장은 읍성 동남쪽 모퉁이로 성곽과 연접해 있습니다.
청주도시계획변천사를 보면 일제가 시구개정사업 즉 도시정비를 한다는 미명아래 청주읍성을 허물어 그 돌로 하수구를 설치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청주도시계획변천사를 보면 (시구 개정은) 1910년에 기안이 돼서 1915년에 준공된 걸로 기록돼 있습니다.]
청주읍성은 7세기 후반 신라 신문왕 때 쌓은 서원경성이 기원으로, 청주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제가 하수관으로 전락시킨 청주읍성의 흔적들이 꼭 100년만에 모습을 드러내 병탄의 아픔을 다시한번 일깨우고 있습니다.
(CJB) 조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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