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마련하겠다던 정부, 정유사에 "성의표시하라"?
휘발유 가격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동불안이 계속되면서 원유가격이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주유소 휘발유가격은 무려 170일 연속, 사상 최장기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초에 이명박 대통령은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빠르게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는데 떨어질 때는 그렇지 못하다는 취지였다는데요, 이른바 '기름값의 비대칭성'을 지적한 것으로 당시 해석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재빠르게' 태스크포스를 구성합니다. 기름값 TF. 관련 교수, 업계 관계자, 공무원등이 주축이 되어 정유사의 '못된 버릇'을 고쳐놓고 기름값 원가구조의 이상한 점을 찾아내 기름값을 내려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TF가 계속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습니다. 당초 지난달에서 이번달 30일, 다시 다음달 초로 세 차례나 계획을 미뤘습니다. 기름값을 내릴 묘안을 짜내보는데 신통치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이 그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더 부추긴 건 주무장관인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입니다.
당초 최 장관은 "정유산업이 자연과점 성격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내가 회계사"라면서 기름값 원가를 계산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최 장관은 정유사가 제대로된 회계 장부, 원가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정유사들도 제대로 설명해야 할 부분인데, 정유사들은 언제부터 정부에 개별 기업의 원가자료를 다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원가는 기업의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부라도 강제로 공개하라 마라 할 수 없다는 게 정유사들의 입장이긴 한데, 정유산업이 과점 성격이 있는 것은 분명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해석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급기야 "한전은 적자를 보면서 정부에 협조하는데 정유업체들은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무리한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발언은 기업들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도를 넘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요, 저녁자리에서 농담으로 한 얘기도 아니고 공개석상에서 정유사들을 향해 '말을 들어라, 안 내리면 큰일난다'는 취지로, 어찌보면 윽박지르는 식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정부가 유가TF까지 구성해서 연구를 했지만 별다른 결과물을 얻지 못하자 정유사들을 압박하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회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최종 결과물은 안 나왔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애초에 지적했던 '가격의 비대칭성' 부분은 입증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기준 시점을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정유사 상표가 없는 이른바 '자가폴주유소'를 늘려 석유를 공동구매하도록 하는 방안, 그리고 대형마트 주유소를 늘려서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방안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모두 한방에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서 기름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유류세 인하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워낙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징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다보니 정부로서는 포기하기 쉽지 않은 부분일 듯도 합니다.
어쨌든 정부도 상당히 고심하고 있는데 방법을 못찾는다면 계속 비싼 기름값이 유지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게 맞을까요? 안타깝게도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습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정유 4사는 현재 가격산정방식에 폭리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률이 2%대로 낮기 때문에 폭리를 취할래야 취할 수 없다, 뻔히 가격이 다 공개되는 속에서 어떤 담합이 가능하겠느냐, 그런 주장입니다.
하지만 요새 이런 정유회사들 표정관리 '쎄게' 하고 있습니다. 1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그야말로 '가시방석'인 셈입니다. 이유는 국제유가가 올라서 정제마진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정유회사들은 원유를 벌크로 들여옵니다. 예를들면 다량 도입한 원유를 가지고 우리나라 공장에서 정제작업을 거쳐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벙커C유 이렇게 구분해서 다시 내다파는 겁니다. 80달러일 때 들여왔던 원유를 가지고 이렇게 석유제품을 만들어 100달러 넘었을 때 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제마진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 소비자원이 국내 기름값이 국제 시세보다 비싸진 않다고 밝히긴 했습니다만, '고유가 속에 제 잇속만 챙긴다`는 비판 여론과 가격인하 압박이 거세질까 정유업계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가격을 내리려는 정부, 폭리는 아니라고 맞서는 정유사 양측을 취재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것입니다. 일단 정유 4사가 말 그대로 '폭리'를 취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인 것은 맞습니다. 절반 이상이 세금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가격을 가지고 유동적으로 움직일 폭도 작은 게 사실이고, 주유소 마진 등까지 더해서 소비자들에게 나가기 때문에 정유사가 공급가를 10원, 20원 낮춘다고 해서 사람들이 체감할 정도로 기름값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도 이 부분 때문에 브랜드별 공급 독과점을 깨고 공동구매 형태로 공급가를 낮추는 방안, 즉 유통을 손대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제해서 마진을 붙여 내다파는 싱가포르 시장 가격을 다시 우리나라 공급가로 삼는데 대해서는 분명히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즉 '이중마진' 논란이 그것입니다. 이 기름을 다시 국내에서 마진을 붙여 팔고 있기 때문이죠. 정유사들은 운송비용 등을 따지면 싱가포르 공급가는 엄밀히 마진을 붙였다 말하기 어렵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확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근거는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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