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앞으로 다가온 4.27 재보선은 내년 총선의 지형을 가늠케 하는 '맛뵈기'격의 선거다.
주요 선거는 강원도지사와 성남 분당을, 경남 김해을, 전남 순천 국회의원 보선등 4개에 불과하지만, 여야는 총선의 전초전을 치르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적격 후보를 고르는 관문이 끝나면 4월부터는 필승전략이 풀가동될 전망이다.
이번 재보선의 무대에는 정치 거물이 속속 등장하는가 하면, 차기 대선 고지를 향한 잠룡들의 발걸음도 빨라져 '정치의 계절'을 실감케 하고 있다.
◇손학규-정운찬 대결 성사되나 = 정운찬 전 총리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대결은 이번 선거 최대의 흥행카드지만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정 전 총리의 불출마 발언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그의 영입 가능성을 여전히 의중에 두고 있고, 손 대표도 출마 여부를 속시원히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총리의 출마론은 전략공천에 대한 한나라당 내 반발, 신정아씨 자서전 출판에 따른 그의 도덕성 논란으로 이미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당내에서는 '사실상 공천은 물건너갔다'는 진단도 많다.
그러나 주류 일각이 손 대표의 분당을 출마를 염두에 두고 그의 출마론을 완전히 접지 못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가 출마할지 여부도 아직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다만 그가 25일 침묵을 깨고 '선당후사(先黨後私)'를 언급하자 출마로 기울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손 대표로서는 이번 보선에 패하면 정치적 타격을, 불출마를 택한다면 '수도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관측된다.
◇'노무현 성지'서 김태호 당선될까 =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낙마한 김태호 전 경남지사에게 김해을 보선은 명예회복의 기회나 다름없다.
한나라당 김해을 예비후보가 8명 중에서도 그의 입지는 탄탄해 보인다.
그러나 선거 환경은 험난 그 자체다. 김해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이 있는 '성지'로 야권이 승전고를 울리겠다고 벼르는 지역이다.
특히 야권의 유력 차기주자인 민주당 손학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간 친노(親盧) 적통싸움이 김해을에서 불붙으면서 구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내년 총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밀알이 되겠다"고 말한 김 전 지사는 바닥표심 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친노 정서를 어떻게 돌파할지, '박연차 게이트 연루설'은 어떻게 털어낼지가 또다른 숙제이다.
결국, 야권후보 단일화 여부로 판가름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손학규 유시민 대표의 양보없는 대결로 향배를 예단키 어렵지만,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김 전 지사의 고전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광재 동정론 對 박근혜 지원 = 강원지사 보선은 MBC 사장 출신인 한나라당 엄기영, 민주당 최문순 예비후보만의 대결은 아니다.
민주당은 친노 인사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현직에서 물러난 후 도내에서 동정론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서 그의 후광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경선을 앞둔 당내 후보들이 이 전 지사에게 측면지원을 요청하거나, 친분을 과시하며 '이광재 마케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한나라당에서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 전 대표의 강원도행에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당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의 고문인 그는 지난 15일 특위 발대식 참석차 춘천을 찾은 데 이어 29일에도 강릉과 평창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 D-99'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오랜 잠행에서 벗어나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정치적 발언도, 지원유세도 없지만 평창을 매개로 한 박 전 대표의 대외활동은 '무언의 유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당내의 일치된 견해다.
◇애매한 승패기준 = 한나라당이 분당을, 민주당이 강원지사 및 김해을을 차지했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이 1승(분당을), 민주당이 2승(강원지사, 김해을)을 거둔다면 '무승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이 내년 총선의 전초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재보선 성적표가 현 여야 지도부의 정치적 운명과도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각 정당 내에서 승패 기준을 둘러싼 견해가 분분하다.
한나라당이 재보선 승리를 선언하려면 '분당을 사수'는 필수다. 다른 2곳에서 승리하더라도 텃밭으로 꼽히는 분당을 수성에 실패할 경우 "당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분당을에서만 승리, '1승2패'의 결과를 낳을 경우 패배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팽배하며, 분당을과 김해을 2곳에서 승리하고 강원지사 선거에서 질 경우도 '패배'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강원지사 보선이 내년 총선 및 대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큰 규모의 선거인 데다, 전통적 강세지역으로 분류되던 이곳에서의 지난해 패배로 여권 전체가 엄청난 후폭풍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승패 기준이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민주당 몫인 강원지사와 김해을 2곳에서 모두 승리할 경우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겠지만, 어느 1곳에서의 수성에 실패한다면 곧바로 패배의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
문제는 손학규 대표의 출마설이 나오는 분당을이다. '제2의 강남'이라 불리는 만큼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손 대표가 출마를 결심한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략지로 정치적 비중이 커질 것은 자명하다.
손 대표가 직접 나섰음에도 패배할 경우 당 대표 출마 지역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재보선 패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단일화 바람부나 = 지난해 지방선거 등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의 위력이 입증된 만큼 민주당 등 야 4당은 한나라당과의 1 대 1 대결구도를 만드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정파별 입장차로 협상시한(20일)을 넘기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대 관건인 김해을에서 민주당과 참여당은 국민참여경선 방식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야권 일각에서는 야 4당 차원의 일괄 협상은 내주 중 종료되고, 지역별로 각 정파의 후보캠프가 단일화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해을 등 격전지에서 한나라당를 압도하기 위해서는 '단일화 바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바람을 차단하기 위한 한나라당의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어 "야권의 단일화 논의는 선거법 위반"이라는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영남권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김해을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야권 단일 후보와 맞설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잠룡들 셈법 복잡 = 재보선 성적표는 정치권의 지형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잠룡들의 속내도 복잡하다.
여야 잠룡 중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여권의 정운찬 전 총리, 김태호 전 지사는 이번 재보선의 직접 당사자다.
분당을 출마설이 거론되고 있고, 잠재적 경쟁자이자 친노의 적통을 자처하는 참여당 유시민 대표와 김해을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손 대표로서는 이번 재보선이 대권행보에 날개를 다는 기회가 될 수도, 제동이 걸리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본인의 불출마 의사에도 불구하고 손 대표의 출마가 현실화될 경우 여권 내 '정운찬 카드'는 재부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 전 총리가 '신정아 파동'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치 행보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김해을에 출사표를 던진 김태호 전 지사는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높은 파고를 넘어서느냐에 따라 정치적 중량감이 달라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고리로 한 잇단 강원행이 강원지사 보선의 우회 지원으로 읽히고 있는 만큼 '선거의 여왕'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할지 주목된다.
또한 내년 총선을 통해 참여당을 전국정당으로 발돋움시키려는 유시민 대표는 김해을에서 자당 후보로의 야권 단일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