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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리비아인 "혁명 실패…희망을 잃었다"

입력 : 2011.03.23 05:36

아랍인들 "제3의 전쟁 시작…민간인만 피해" 비판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주도하는 다국적군과 리비아 카다피간의 전쟁을 주한 리비아인들은 어떻게 볼까?

주한 리비아인과 아랍인들은 대체로 카다피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다국적군의 리바아 공습에는 부정적이었다. 이들의 우려는 무엇보다 민간인 희생과 전쟁의 장기화였다.

2000년부터 한국과 리비아를 오가며 사업을 해온 리비아인 아부감 마곱(41)씨는 23일 "반(反) 카다피 시위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개입으로 우리가 바라던 것들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탄식했다.

마곱씨는 "이집트에서처럼 순수하게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꾸려고 했지만, 외국이 개입하고 민간인이 엄청나게 피해를 보는 자체만으로 우리가 원하던 것에서 이미 벗어났다. 무혈혁명의 꿈은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유학 준비를 하는 리비아 출신의 마수드(25)씨도 "미국과 유럽은 그동안 카다피 독재정권을 뒷받침하는데 일조했으면서 이제는 리비아인을 위해 전쟁을 한다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마수드씨는 "국제사회에 리비아인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한 것은 실업이나 가난 문제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도자의 교체를 도와달라고 한 것이지 전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우리나라 땅이다.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다국적군 개입으로 리비아인들은 희망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공습으로 카다피를 더 쉽게 내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후유증은 평화시위에 따른 정권교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날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가 또 우리나라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도 더 커졌다. 이번에는 외국 식민지라니 슬프다"라고 했다.

그러나 카다피가 '십자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이번 군사 개입을 '서방 대 아랍 이슬람', '제국주의 대 식민지' 전쟁 구도로 몰아가는 것에는 두 사람 모두 반대했다.

마곱씨는 "십자군이란 말은 우리 국민에게 종교적 낙인를 찍게 된다. 또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에서 비롯된 이번 사태에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리면 아랍인들을 서구와 대립 등 개념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고 주장했다.

마수드씨도 "십자군 전쟁이라는 표현은 카다피가 반외세 반응을 자극하려고 내놓은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교 전쟁을 떠올리고 우리 종교나 문화를 지키고자 미국을 적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아랍인 대다수도 두 리비아인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역업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인 모하메드 알-타니(50)씨는 "이집트처럼 평화롭게 독재자를 몰아내지 못하고 외세가 개입한 것은 유감이다. 아랍인들은 전쟁에 지쳤다. 다국적군이 침공을 했다고 들었을 때 아랍인들은 이미 제3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어학 연수 중인 이란인 베누쉬 아부야지(30)씨도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들이다. 국제사회가 이런 문제를 생각했다면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 2년간 체류한 모로코인 사이먼(27)씨 역시 "다국적군의 공습에는 문제가 많다. 리비아 민간인들이 죽고 다쳤다. 리비아에는 튀니지와 이집트, 알제리 등 중동 국민도 많이 산다. 다른 나라 국민의 생명에 위험이 될 수도 있는 공격"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다국적군의 공습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라크인 니하드 카마스(30)씨는 "물론 공습에 따른 피해가 많다. 그렇다 해도 미국 등이 개입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카다피가 계속 집권하면 국민을 죽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카다피에 맞서는 미국과 연합군이 잘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해서라도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낫지 않나. 사람이 하나도 죽지 않고는 혁명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재의 아랍 세계가 1800년대 이래로 서구 열강의 침탈을 계속 받아왔다. 이러한 피해의식 때문에 서구에 대한 반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깊다"고 분석했다.

또 "중동에 대한 서구 침탈의 표면적 이유는 민주주의이지만, 주목적은 석유에 있고, 이 사실을 아랍 사람들도 잘 알고 있어 서구에 대한 반감은 깊을 수밖에 없다. 석유가 아니라면 카다피를 제거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아프리카 내전처럼 내버려 두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