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의 공소시효, 과연 필요합니까?
살인자들이 큰 돈을 챙길 기회를 얻었습니다. 5천만 원입니다. 조건은 하나 뿐입니다. 그들이 살해한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가 왜 죽였는지, 어떻게 죽였는지 털어놓기만 하면 됩니다.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입니다. 1991년 실종된, 그리고 결국 2002년 유골이 발견되며 살해된 사실이 밝혀진 '개구리 소년'들의 부모들이 '죽인 이유와 경위만 말해주면' 범인에게 5천만 원을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개구리소년' 故 우철원 군의 아버지인 우종우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이제는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벌도 받지 않습니다. 범인이..우리는 범인이 여러 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범인 중 한 명이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서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故 우철원 군을 비롯해 5명의 개구리 소년이 살해된 사건의 공소시효는 2006년 '완성'됐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1991년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15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2006년 3월 27일, 범인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다섯 소년 가족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날 밤을 지샜을까요? 살해된 이들의 가족은 비탄에 잠기고, 살인자들은 환희에 가득찬 하루, 과연 이것이 정의일까요?
공소시효란 무엇인가?
공소시효는 무엇인지,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사전의 무심한 정의는 이렇습니다.
공소시효
어떤 범죄에 대하여 일정기간이 경과한 때에는 공소의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를 말한다 (중략) 공소시효의 제도적인 존재이유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생한 사실상의 상태의 존중, 소송법 상으로 시간의 경과에 의하여 증거판단이 곤란하게 된다는 것, 실체법상으로는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 약화, 피고인의 생활안정 보장 등이 있다. 그러므로 공소시효가 완성하며 실체적인 심판을 함이 없이 면소판결을 하여야 한다. (하략)
- 조상원 엮음, 도해 법률용어사전, 현암사, 2000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시간이 흐를 만큼 흐른 만큼 과거의 일을 들춰내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 타당치 않고(법적 안정성), 현실적으로 증거 수집이 어려운 만큼, 또 피의자도 장기간 도피 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겪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이제 그만하자는 것이 공소시효의 존재 이유입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기는 어렵습니다. 로마법 이후 서양의 사법 체계를 받아들인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소시효 제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범죄에 대해 국가가 무한정 추적하는 일은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겠지요...
살인죄의 공소시효, 반드시 필요합니까?
그러나 '살인',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가 반드시 필요한지는 의문입니다. 이른바 '선진국'일수록 살인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우리 법률의 모델이 된 일본법도 최근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했습니다. 대륙법계의 대표적 국가인 독일도 계획된 살인(모살)과 대량살상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영미법계인 미국 연방법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살인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법안 2개가 지난 해 여름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장윤석 의원은 '법정형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 중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 46개에 대하여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내놨고, 홍재형 의원은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뿐 아니라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 109개에 대해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검사 출신으로 형사법 박사이기도 한 장윤석 의원은 이제 공소시효의 입법 근거인 '법적 안정성'보다 살인 범죄를 끝까지 수사해야 할 '구체적 타당성'이 더 강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DNA 감정 등을 통해 얼마든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또 살인자가 처벌받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범죄가 저질러진 상태가 오래되었으니 놓아주자는 '안정성'의 이념보다, 범죄를 처벌할 수 있고,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의 '구체적 타당성'이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최소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법안 모두 별 다른 반향없이 모두 국회 캐비넷 어딘가에 잠들어 있습니다. 최근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이 개봉 일주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흉악 범죄 공소시효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흉악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는 너무 작기만 합니다.
25년이 지나면, 죽은 아이가 잊혀질까요?
지난 2007년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습니다. 충분치 않습니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25년이 지나면 사건을 잊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죽인 범인은 25년간 숨 죽이며 살았으니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요?
지난 해에도 4건의 살인사건이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됐습니다. 4명 이상의 살인자들은 이제 자유롭고 떳떳한 몸이 됐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일에 대해 정의를 세우는 일에 시효가 있다는 것,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제는 공소시효가 끝나 벌도 받지 않으니' '죽인 이유라고 알고 싶다며' 살해된 아이의 부모들이 살인자들에게 사정해야 하는 모습은 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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