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합작 음악극 '방귀쟁이 며느리'
뽕뿡 빵뿡! 뽕뿡 빵뿡! 음악극 ‘방귀쟁이 며느리’ 무대는 방귀 소리로 진동한다. 그런데 가락을 붙여 부르는 '뽕뿡 빵뿡'에는 중독성이 있는지, 나도 가끔 혼자서 '뽕뿡 빵뿡!’을 흥얼거리곤 한다. 그러다 보면 딸도 ‘뽕뿡 빵뿡’에 합세하고, 곧 함께 웃느라 자지러진다. 방귀 얘기 좋아하는 건 어린이들만이 아니다. 취재하느라 한 번 보고, 나중에 가족과 함께 한 번 더 봤는데, 남편이 ‘딸보다 엄마가 더 좋아한다’고 놀릴 정도였으니.
처음 ‘방귀쟁이 며느리’ 공연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갔다. ‘방귀 역할을 배우가 맡아서 하고, 그 배우가 한국 사람도 아닌 영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영국 배우가 출연하는 것은 어린이 연극 전문 극단인 ‘사다리’가 영국 극단 ‘모비 덕’과 공동 제작하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방귀쟁이 며느리는 잘 알려진 우리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요란하고 힘센 ‘울트라슈퍼’ 방귀가 고민인 봉순이. 방귀 소문을 모르는 아랫마을로 시집가 삼 년 동안 방귀를 참고 살다가 병에 걸린다. 시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봉순이가 삼 년 묵은 방귀를 뀌자 집안은 풍비박산. 봉순이는 방귀 때문에 시집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지만, 가는 길에 방귀 덕분에 많은 어려운 일을 해결하게 된다.
방귀(영어로는 'fart') 역은 모비덕의 배우 줄리 베이커가 맡았다. 사실 방귀 역을 사람이 한다는 아이디어는 이 연극에 영국 배우가 출연하기로 결정되면서 나왔다고 한다. 이 공연의 연출가 이정은 씨는 ‘방귀는 사람 몸에 있으면서도 뭔가 다르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외국인 배우가 맡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방귀는 봉순이의 '억압된 자아'로 볼 수 있으니, 이를 인물화하면 더 잘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도 했다.
줄리는 ‘방귀 역할로 한국에서 연극 해 볼래?’라는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세상에 어떤 배우가 ‘방귀 역’이라는 게 있어서 이걸 연기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방귀 연기는 사람 연기하는 것과 다르죠. 평범한 생각 갖고는 안 돼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해요. 어린이들은 재미있게 보고, 저를 가리켜 "She is the fart! 방귀!' 할 수 있을 거예요."
연출가 이정은 씨는 줄리가 보여주는 광대적이고 재미있는 표정 연기, 발랄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방귀 역과 잘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방귀는 천방지축 장난꾸러기다. 참한 며느리 봉순이 뱃속에 있다가 틈만 나면 나와서 장난 칠 기회를 찾는다. 대사가 많지는 않다. 삼 년 동안 갇혀 살면서 ‘아이 답답해!’를 외치고, ‘그까짓 방귀, 뀌어라 뀌어!’ 하는 시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희희낙락, ‘Yes!’를 외치는 정도다. 대사는 적지만 익살스러운 표정과 유연한 몸짓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봉순이 역의 임효신 씨와 방귀 역의 줄리 베이커는 '찰떡궁합'을 과시한다. 방귀는 봉순이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가, 봉순이 등 뒤에 숨었다가, 봉순이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봉순이와 숨바꼭질하거나, 하는 식으로 봉순이와 계속 티격태격하는데, 호흡이 잘 맞아야 할 수 있는 연기다. 극의 후반에 이르면 순이와 방귀는 내용상으로도 척척 호흡이 맞는 ‘환상의 복식조’로 거듭난다.
줄리 베이커는 이 작품이 단순히 ‘방귀를 억지로 참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이나 속성을 있는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게 이치에 맞고 건강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봉순이의 입장에서 본 ‘방귀쟁이 며느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면서 성장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봉순이 역의 임효신 씨는 이렇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세요!"
'방귀쟁이 며느리'는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지만,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다. 꼬마신랑은 인형이 연기하고, 멧돼지와 싸우는 장면은 그림자극으로 처리하고, 영상을 활용하는 등 이 공연은 다양한 표현 방법을 동원한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전통가락을 바탕으로 한 노래와 춤도 매력이다. 북과 장구를 맡은 반주자는 판소리의 고수처럼 무대 위 배우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흥을 돋운다.
모비덕 극단에서는 이 작품의 영국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협력연출가인 영국인 피터 윈윌슨은 현재 ‘방귀쟁이 며느리’ 영어 대본을 쓰고 있다. 영국 배우들이 영어로 공연할 이 작품은 9월에 영국에서 처음 선보인다. 영어 버전은 지금 공연되는 한국어 버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 현지 상황에 맞춰 조금씩 변형될 테니까.
다만 확실한 건 이번에 줄리가 한국 공연에 참여한 것처럼, 영어 버전 공연에도 극단 사다리의 한국인 배우가 한 명 참여한다는 것이다. 한국 버전에서는 방귀 역할을 설정해 영국인 배우에게 맡긴 게 성공적이었지만, 영국 버전에서는 방귀 역할을 따로 둘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영국 어린이들에게는 꼬마 신랑이나 시집살이 같은 개념은 생소해서 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피터는 극이 영국 상황에 맞춰 수정되기는 하겠지만, 한국적 요소는 대부분 다 살릴 것이라고 했다. 영국 어린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접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방귀 이야기를 영국 어린이들이 좋아할까 물었더니 모비덕 극단의 예술감독인 가이 헛친스(그는 알고 보니 나의 영국인 친구와 아는 사이였다. 세상은 정말 좁다!)는 ‘물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귀쟁이 이야기’는 Naughty(버릇없는, 말 안 듣는, 약간 무례한) Story’이고, 어린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면서. 그는 영국에는 방귀와 관련된 짧은 농담은 있지만, 이런 멋진 이야기는 없어서 유감이라고 했다.
영어에서는 방귀 소리를 뭐라고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물었더니 특별히 방귀 소리를 나타내는 단어는 없고, 손등에 입술을 대고 내는 마찰음 피이~푸우~ 소리 정도가 쓰인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말의 ‘뽕’ '뿡’은 방귀 소리를 표현하는 데 아주 그만인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방귀 종류도 많지 않은가. 고구마방귀, 물방귀, 픽방귀, 보리방귀, 따발총방귀 등등^^
방귀쟁이 며느리는 공연도 재미있었지만, 연습장을 방문했을 때도 재미있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한국과 영국의 연극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천덕꾸러기 방귀’가 ‘복방귀’로 거듭나는 과정을 하나하나 만들어내고 있었다. 호흡을 오래 맞추다 보니 이들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도 서로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
영국 공연이 궁금하다. 영국에서 ‘방귀쟁이 며느리’는 어떤 모습일까. ‘뽕뿡 빵뿡!’이 영국의 극장에서도 울려퍼질까. 이 연극을 함께 만든 한국과 영국의 연극인들은 이 ‘글로벌 프로젝트’가 잘 진행돼서, 언젠가는 ‘방귀쟁이 며느리’의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을 한 곳에서 잇따라 공연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원작인 독일 그립스 극단의 ‘리니에 아인스’가 그랬던 것처럼.
(2월 27일까지, 한옥마을 내 남산국악당. 영국인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니 영어 연극인 줄 오인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한국어로 공연된다. 공연장인 남산국악당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영어. 일어. 중국어 자막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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