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국가들에 부는 민주화 요구 열기가 사막의 모랫바람처럼 거세다.
이러한 민주화 요구 바람이 반세기 넘게 독재체제를 이어가며 3대세습까지 추진하는 북한에까지 도달할지 주목된다.
대북소식통과 탈북자들은 중동 지역과 북한의 서로 다른 체제적 특성을 들어 북한에 민주화 바람이 불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중동 무엇이 닮았나
중동국가와 일부 북아프리카의 공통점은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독재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네 알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은 23년간 대통령을 했고,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30년 집권에 이어 아들 가말 무바라크 집권 국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권력을 넘겨주려고 한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또 높은 인플레와 실업률로 인한 서민의 분노도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북한이 처한 상황도 이들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중동의 거센 모랫바람이 이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섞인 성급한 예상을 내놓기도 한다.
우선 북한은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국가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작년 9.28당대표자회를 통해 27살의 나이 어린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에 오르며 후계자로 공식화되면서 북한 사회 내부에서는 동요 가사를 바꿔 김정은을 조롱하는 노래까지 유행하는 등 반감이 커지고 있다고 대북매체들은 전한다.
이와 함께 2009년 말 시행한 화폐개혁 조치와 2010년 초 시장폐쇄조치로 인플레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대북인권단체인 좋은벗들에 따르면 평양의 쌀값은 지난 7일 ㎏당 2천100원에서 19일 현재 3천200원으로 52% 뛰었는데, 화폐개혁 직전 쌀값이 구권 2천200원(신권 22원 해당) 전후였던 점을 고려하면 무려 1만4천500%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셈이 된다.
이렇게 악화한 상황은 주민들의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작년 2월 함경북도 부령군 고무산역에서는 식량적재열차에 실려 있던 쌀을 훔치려던 주민들과 보안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 3월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된 노동자 형제가 보안원을 살해했다는 대북매체의 전언도 나왔다.
튀니지 혁명의 기폭제가 무허가로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26)라는 청년이 경찰의 단속에 적발돼 팔던 물건을 모두 빼앗긴 뒤 민원을 해도 소용이 없자 시청 청사 앞에서 휘발유를 온몸에 붓고 분신을 한 사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도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은 조건 면에서는 충분한 셈이다.
◇정보통제와 억압…'조직된 저항' 어려워
북한의 이 같은 정치·사회·경제적 부조리에도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바람이 전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한 고위층 출신 탈북자는 "개인이 먹고사는 문제로 보안원과 마찰을 빚는 등의 사건은 생길 수 있겠지만 조직된 저항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며 "북한 주민들은 악화된 삶에 대해 항의할 수는 있지만 역성혁명을 꿈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불만이 조직화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는 북한의 열악한 정보유통구조와 당국의 철저한 개인통제를 꼽을 수 있다.
튀니지 혁명의 경우에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벤 알리 정권의 부패상을 담은 미국의 외교전문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 뉴스로 촉발된 시위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개인들에게 전달되면서 시위와 대중의 저항이 자발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외부와 인터넷 연결이 차단돼 있어 김정일 정권의 부패상을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인트라넷도 북한 당국의 철저한 검열과 통제 속에 사용되고 있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다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민 통제시스템은 중동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은 최근 국경지역에 대한 주민 감시체계 강화 방안으로 기존의 '5호 담당제'를 '3호 담당제'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고 대북 인터넷매체 '데일리NK'가 전하기도 했다.
주민 상호감시체계에다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공안기관의 통제와 정치범수용소 등 공포정치까지 더해져 북한 주민이 시위를 통해 김정일 정권에 맞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게 탈북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벌어지는 틈새…접경지역 변화상
전 세계적인 정보통신(IT) 기술의 발전 속에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틈새가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09년 11월 말 전격적으로 단행한 북한의 화폐개혁 조치가 공개된 것은 국경지역 주민의 휴대전화 제보가 절대적이었다. 속살을 공개하지 않는 북한사회가 IT 발전으로 더이상 폐쇄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이 화폐개혁 소식을 외부로 전한 신의주 거주 20대 청년을 검거해 처형한 것으로 '데일리NK'가 전한 것은 북한 당국이 이 사건을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도 많은 국내의 대북매체들이 북한 주민에게 중국산 휴대전화를 주고 고향으로 들여보내 북한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북한 소식을 외부로 전하지만, 역으로 외부의 소식을 북한사회에 전파하는 거점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에 부는 '한류'는 남한 사회의 자유민주주의를 전달하는 창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사회에 컴퓨터 보급이 확산하면서 DVD 등으로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가 빠르게 전파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남한의 TV를 직접 시청하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
재작년 3월 양강도 혜산시에 살다가 탈북했다는 김은호(가명.38)씨는 "황해남도 연안에서는 남한의 공중파 방송을 쉽게 시청할 수 있는데, 그쪽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연설도 생중계로 봤다고 한다"며 "북한 주민의 99%는 한국 드라마를 적어도 한두번씩 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북한 당국의 물자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북한사회에서 정보유통을 가능케 하는 현상이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주재 영국대사는 지난 2일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북한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제한 없이 정보가 교환되는 장소"라며 "주민들이 시장에서 물건값만 흥정하는 게 아니라 공개처형, 홍수 등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전해 듣는다. 지금은 이집트 사태가 장마당의 주요 화젯거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