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서도 묵묵히 선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셨을 겁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삼호주얼리호 석해균(58) 선장의 둘째 아들 현수(31)씨는 24일 연합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아마 다른 분이 삼호주얼리호의 선장이셨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아버지가 훌륭한 일을 하신 건 틀림없지만 지나치게 아버지만 영웅시하는 것은 목숨이 위태로운 고비를 함께 넘긴 다른 선원들에게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수씨는 "아버지는 굉장히 과묵하셨고 자상하시면서도 본분을 지켜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고 소개한뒤 "늘 선원과 배를 자신의 목숨 보다 더 아끼셨다"고 강조했다.
그와 석 선장의 부인 최진희(59)씨는 오만 병원에서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는 아버지와 남편 걱정이 태산이다.
현수씨는 "첫 보도에서 아버지가 부상을 당했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고 건강이 좋다고 해 안심했었는데 재수술 얘기가 나오고 복부에 총탄을 3발이나 맞았다는 보도가 나와 어머니가 큰 충격에 빠져 몸져 누우셨다"며 "아버지가 얼른 건강을 회복하셔서 다함께 집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할 뿐"이라고 부친의 안위를 걱정했다.
해운업계에서 석 선장은 '완벽한 선장'으로 통했다.
선원들에게 자상하게 대하면서도 자신의 임무는 완벽하게 수행했다.
삼호해운 관계자는 "석 선장은 단 한번도 운항 스케줄을 어기지 않았고 화물 운송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클레임이 들어온 적도 없었다"며 "항해 임무가 떨어지면 항로를 철저히 연구하고 점검했으며 출항 전에는 꼼꼼하게 배와 화물 상태를 체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원래 삼호주얼리호가 아닌 삼호프리덤호 선장으로 한달 전 긴 항해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러나 삼호해운 측은 장거리 운항 후 한달 정도 휴식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어렵게 석 선장에게 삼호주얼리호를 맡아달라고 요청하자 석 선장은 싫다는 기색없이 흔쾌히 삼호주얼리호의 키를 잡았다.
현수씨는 "아버지께서 '회사 일인데 내가 가야지'라고 하셨다. 그때 말리지 못한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석 선장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초.중교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해기사(海技士) 양성소에 들어가 3등 항해사가 된뒤 2등 항해사, 1등 항해사를 거쳐 2000년 선장이 됐다.
1971년 해군 하사관 12기로 군 생화을 시작해 군함과 해군작전사령부 예하부대에서 5년간 복무하기도 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석 선장은 선장으로서 임무 수행에 누구보다 철저한 뱃사람이다. 하지만 자신만 영웅시되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석 선장이 얼른 건강을 회복해 다시 키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