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린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북극 한파를 무색케할 정도로 뜨거운 신경전을 벌였다.
증인신문 순서 등의 재판 진행절차는 물론 상대방의 신문 내용이나 태도까지 하나라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양측의 기싸움에 재판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계속 늘어졌고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들의 열기도 후끈 달아 올랐다.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510호 법정에서 열린 한 전 총리의 5차 속행공판은 이전 공판과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검찰이 이날 예정된 한신건영 전 경리부장 정모씨에 대한 변호인 측 반대신문에 앞서 지난 공판에서 미뤘던 한만호(50.수감중) 전 한신건영 대표의 '휴대전화 알리바이'에 대한 반박 프레젠테이션을 하려고 하자 변호인 측이 근거 규정이 무엇인지 따지고 나선 것.
백승헌 변호사는 검찰의 프레젠테이션이 "형사소송법 몇 조에 따른 행위냐"고 물었고, 임관혁 검사는 "공판중심주의 등 포괄적인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라 변론이 가능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재판장인 형사합의22부 김우진 부장판사가 검찰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다며 '유권해석'을 내리고 정리하자 이번에는 변호인 측이 휴대전화 문제와 관련해 검찰이 아직 법정에서 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언론에서 먼저 보도된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한씨의 휴대전화 관련 검찰 설명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미리 출력된 자료를 요구해 '한 전 총리 차명폰' 등 아직 법정에서 채택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들이 설명 자료에 포함돼 있다며 프리젠테이션에서 뺄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이 정씨를 반대신문하는 과정에서 중간 중간 '신문이 부적절하다'며 강력하게 태클을 건 것.
검사들은 "아까 증인이 답한 내용을 반복해서 물어본다", "증인은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다", "진술조서에 밑줄을 쳐서 보여주면서 신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등 상대측의 흐름을 끊는 데 주력했다.
검찰은 또 "신문에 대해 항의하면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백 변호사가 펜을 던지듯이 내려놓는다"며 재판장에게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변호인 측이 "우리도 할 말이 많다"고 항의하자 검찰은 "충분히 하시고 계시지 않느냐"며 날카롭게 대응하기도 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전은 지난해 12월20일 공판에서 한씨가 검찰에서의 진술을 뒤집고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며 180도 돌아서면서부터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4일 공판은 다음날 오전 2시30분께, 지난 11일 공판은 다음날 오전 3시10분께 각각 끝날 정도로 재판이 늘어진 것도 양측이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태도로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방청객도 덩달아 흥분해 야유와 실소를 보내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고, 11일 공판에서는 검사에게 욕설을 퍼부은 한 방청객이 퇴정 명령을 받기도 했다.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검찰이 자존심 회복을 노리는 반면 변호인 측은 한 전 총리의 정치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입장이어서 이번 사건이 선고될때까지는 과열된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