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이호진 회장의 모친이자 그룹 재무 책임자 이선애 상무가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올해 나이 83세. '왕상무'로 불리며 수십년 동안 최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한 혐의였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온 '왕상무'
이선애 상무는 구급차를 타고 왔습니다. 얼굴은 마스크와 모자로 모두 가린 상태였습니다. 구급차에서 내릴 때는 응급 환자 이송용 침대를 이용했습니다. 검찰청사에 들어설 때는 동행한 응급요원이 침대 등받이를 세운 뒤 바퀴가 달린 침대를 뒤에서 밀었습니다. "비자금 조성 혐의 인정하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봐왔던 장면입니다.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재벌 총수들이 병약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광경,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아픈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 동정을 사려는 전략이었죠.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또 '휠체어 쇼'냐고 비아냥 거리는 소리가 출석 현장 이곳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현장에 있던 한 기자는 "얼마나 쇼 하나 보자~"라고 한마디 했다가 격분한 태광 직원과 드잡이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선애 상무 연세가 올해 84입니다. 분명 컨디션이 좋진 않았겠죠. 그러나 건강 상태가 과연 구급차를 타고 올 정도였을까요?
검찰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소환 조사를 하기 전에 의사 소견을 물었는데, 대학병원 종합검진에서 이상이 없었고, 검찰이 따로 알아본 결과 입원 도중 외출도 수 차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4시간에 이르는 조사 과정에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질문에 또박또박 답을 했다며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만약 검찰 말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구급차를 이용한 것부터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현행 법에는 구급차는 응급환자나 척추질환 또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검찰에서 14시간이나 조사를 '또박 또박' 받을 정도면 도저히 응급환자라고는 볼 수 없겠죠. 이른바 '휠체어 쇼'를 하려고 구급차까지 동원했다는 비판,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부적절한 검찰의 '입'
그러나 검찰의 언론 플레이도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검찰은 이선애 상무가 구급차를 타고 등장하자, 이례적으로 보도자료 메일을 기자단에 배포했습니다. '재벌오너와 휠체어'. 보도자료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출석하는 재벌들의 행태를 꼬집는 신문기사와 칼럼 등을 캡처한 사진 파일 3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에 덧붙여 서울 서부지검 관계자는 이른바 '수사공보준칙'을 엄격히 적용하며 취재를 제한했던 것과 달리, 이선애 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자세한 사항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언론과 다릅니다. 설마 대중과 언론의 시선에서 볼 때, 재벌의 '휠체어 쇼'가 못 마땅하더라도 수사 당사자인 검찰은 법과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함부로 논평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특히 그 논평으로 검찰이 이득을 볼 경우에 더 조심해야 마땅합니다. 대한민국의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있는 검찰 조직이 그러한 논평이 불러올 효과에 대해 모르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고, 따라서 계산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서울 서부지검이 언론 취재에 응대하며 그토록 강조했던 수사공보준칙에는 분명히 피의자의 건강상황(사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밝히지 말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
제19조【공개금지정보】 ① 수사사건에 관한 다음 각 호의 정보는 이를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공판에서 현출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사건관계인의 인격 및 사생활
재벌과 검찰. 한 쪽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고, 다른 한 쪽은 가장 예리한 칼을 들고 있는 조직입니다. 이런 두 조직이 왜 한 쪽은 '마스크'로 싸매고, 다른 한 쪽은 부적절한 방식으로 '입'을 열어가며 언론플레이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는 소리를 하기에는 양 쪽 모두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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