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 140만마리 매몰…축산업 초토화 지하수 오염, 악취 2차 오염 우려, 축산농가, 방역요원 정신적 상처
지난해 11월28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4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구제역이 퍼진 지역만도 경북.인천.강원.경기.충남북 등 6개 시.도에 걸쳐 있고 3천500농가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소와 돼지 등 가축 14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지금까지 발생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만 해도 엄청나지만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어서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축산기반 와해 위기
현재까지 전체 소와 돼지(79만9천929마리)의 약 60%가 살처분된 경기 북부지역은 축산기반이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원지역 또한 현재까지 18개 시.군 가운데 10개 시.군, 27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 전체 사육 우제류의 약 20%인 14만2천여마리가 살처분됐거나 진행 중이다.
특히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횡성한우를 비롯해 대관령한우, 홍천 늘푸름한우 등 6대 한우 브랜드의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구제역이 종식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기약이 없는 데다, 지금 당장 구제역이 사라진다고 해도 빨라야 5월 이후에나 가축 사육을 재개할 수 있다.
한우의 경우 송아지를 새로 들여와 2∼3년은 키워야 수매할 수 있고, 번식을 목적으로 암소를 키우는 농가는 4∼5년은 더 기다려야 해 축산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그나마 대부분 축산농가가 몇 년간 급등한 사료값과 약품비 등으로 많게는 수억원씩의 빚을 지고 있어서 더욱 어려운 지경이다.
횡성의 축산농민 한모(47)씨는 "축산기반이 무너져가는 데다 앞으로 매몰지를 활용할 수도 없고 지역에 대한 인식도 더욱 나빠질 텐데 후유증이 얼마나 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매몰지 침출수, 악취..2차 오염 현실화
지난달 30일 돼지 3천여마리를 묻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한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매몰지에서 10여m 떨어진 개 사육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최근 경북 영천에서도 침출수가 매몰지 인근 도로까지 흘러나오는 등 매몰처분에 따른 2차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 매몰지 옆에 저류조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거나, 가축이 생매장되면서 몸부림치는 바람에 구덩이에 깔아놓은 비닐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침출수뿐 아니라 매몰지 인근 지하수 오염과 악취 등 겨울철 이후 불거질 환경오염 문제로 각 지방자치단체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에서 환경관리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2차 오염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허술한 방역..정부 신뢰마저 흔들
경기 용인시는 지난 3일 전국 처음으로 산불진화용 임대 헬기를 이용해 용인시 백암면 근삼리와 박곡리 옥산리 일대 축산농가를 중심으로 600ℓ씩 10차례에 걸쳐 소독액을 살포했지만 결국 인근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고 말았다.
애초 지난달 27일에 항공방제를 실시하려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서 미루다보니 때를 놓친 것이다.
이처럼 전국에 강추위가 불어닥치고 구제역 발생지역도 늘어나면서 이동통제초소의 소독액이 얼어붙고 생석회 등 소독약품이 모자라는 등 구제역 방역에 허점이 생기고 있다.
또한 백신접종이 실시됐음에도 살처분 농가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면서 백신 처방의 적절성 여부가 논란에 휩싸였다.
황인식 파주시 한우협회장은 "백신접종 이전에는 구제역이 지엽적으로 발생했지만, 접종 이후에 살처분 대상 가축이 4배가량 늘어나는 등 오히려 광범위한 지역에서 무차별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가축 출하와 관련해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곽근원 안성시 육우협회장은 "정부가 구제역 백신 예방접종 사흘 뒤에 출하할 수 있다고 약속을 해 안성지역의 소 10만여마리가 접종을 끝냈는데 1주일이 지나도 출하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면서 "설 명절에 맞춰 사육해 왔는데 출하 시기를 놓치면서 사료 값만 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매몰작업 지켜본 농민, 방역요원 정신적 상처 우려
살아있는 가축을 대규모로 매몰처분하는 일을 직접 겪은 축산농민과 방역요원들이 겪는 정신적인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다.
밤잠을 설치는가 하면 끔찍했던 순간이 갑작스럽게 떠올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일도 적지 않다.
한 달가량 매몰처분에 투입됐던 안동시청의 한 공무원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가축과 한 달간 씨름하고 나니 몸보다는 마음이 더욱 피폐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안동시 보건소는 지난 10일부터 다음달말까지 정신건강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 축산농민과 방역요원들을 대상으로 상담 및 치료를 벌이고 있고, 경기도 이천시 정신보건센터도 최근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상담을 진행하는 등 매몰처분에 따른 정신적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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