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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키스' 보러 갔다 '세기의 기획자' 만나다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입력 : 2011.01.04 11:11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델피르와 친구들'


‘델피르와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취재했다.(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2월 27일까지.) ‘델피르와 친구들’이라니, 처음에는 무슨 전시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이란 부제를 보고서야, ‘아, 사진전이구나’, 하는 짐작과 함께 ‘델피르가 누구지?’ 하는 질문을 떠올렸다. 알고 보니 델피르는 사진 전시와 출판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프랑스의 기획자 이름이었다. ‘델피르와 친구들’은 델피르의 사진 인생 60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친구들’이 헌정하는 전시회라고 했다.

전시회를 보고는 놀랐다. 전시장 벽이 좁아터질 정도로 유명한 사진들이 즐비했다. (사실 이 전시는 프랑스에서 열렸던 대규모 전시를 들여온 것인데, 넓지 않은 전시장에서 이를 다 보여주려는 욕심을 내다 보니 작품이 지나치게 빽빽하게 전시된 감이 있다. 좀 더 여유를 두고 봐야 감동을 음미할 수 있을 텐데, 조금은 아쉬웠다.) ‘세기의 키스’, ’가장 아름다운 키스’로 꼽히는 로베르 두아노의 1950년작 <시청 앞에서의 키스>, 도발적인 패션모델들의 모습을 담은 헬무트 뉴턴의 <그들이 온다!>, 르네 뷔리가 찍은 체 게바라의 초상 등은 광고나 잡지 등을 통해 이미 대중에게 친숙해진 이미지다.



델피르의 ‘친구들’은 이 밖에도 많다.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요세프 코우델카, 윌리엄 클라인, 레몽 드파르동 같은, 한 명 한 명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도 시원치 않을 사진 거장 50여 명이 델피르의 ‘친구’ 자격으로 이 전시회에 참여했다. 델피르의 사진 인생을 보여주는 185점의 주옥 같은 오리지널 프린트, 150권의 사진 책, 4편의 영화를 이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전시회를 취재하고 쓴 기사에서 <시청 앞에서의 키스>를 앞세워 소개했다. 이 기사는 8시 뉴스가 아닌 낮 뉴스의 전시 종합 리포트로 나갔지만, 만약 8시 뉴스에 냈다면 기사 제목도 <세기의 키스>로 붙였을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파리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 이 작품이 그만큼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진이기 때문이다. 전시회 홍보담당자도 이 사진을 ‘프로모션 메인 이미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이 전시회장 벽에 걸린 수많은 걸작 중 한 장일 뿐이고, 사진 크기도 생각보다는 작았다.

실제로 전시회를 가보면 이런 유명한 사진들도 사진들이지만, 델피르라는 ‘기획자’의 존재감에 압도당하게 된다. 델피르는 일반 대중이 어떻게 사진을 만나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사진집을 처음 발간하고, 엄청나게 큰 사진 패널을 잇따라 세워 거리 사진전을 여는 등, 사진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예술가 이상의 창의성을 발휘했다. 그는 전시 자체도 작품이라는 걸 보여준 '세기의 기획자'였다. 델피르가 없었다면 아마도 사진이 오늘날 이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은데, 이 작가들을 대중에 알리고, 해외에도 소개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훌륭한 예술가가 적은 게 아니라, 걸출한 기획자가 부족한 게 문제라는 말이다. 나는 ‘세기의 키스’를 보러 갔다가 ‘세기의 기획자’를 만났고, 기획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됐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기획자의 역할은 ‘구슬을 꿰는’ 것이 아닐까. 구슬을 꿰는 능력이 탁월한 기획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