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찜질방에서.
'마치 예고된 수순처럼 세찬 바람을 가르던 여객선이 연안부두에 도착하면 수십여 명의 연평도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두에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의 품에 안기거나 찜질방행 버스에 올랐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외신 기자들도 유례 없이 인천의 겨울 바람에 고생깨나 했겠구나, 생각도 듭니다.
연안부두 상황이 잠잠해질 때쯤, 저도 그들을 따라 찜질방에 갔습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아비규환,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찜질방 좁은 공간에 앉아 울상이었으니까요.
어린 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뛰어다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기력없이 누워계시고, 젊은이들은 갖가지 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들에게는 세 끼 식사와 대여섯 대 설치된 TV가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공기가 탁한 찜질방. 시간이 흐르면서 의료진과 구호 물품이 도착하긴 했지만 어르신들의 기침소리는 커졌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잦아들었습니다.
60년 동안 살아왔던 고향이 불 탄 충격에,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찜질방에서의 생활은 보는 사람에게도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연평도 주민들이 찜질방에서 나가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3, 4일 정도겠지 싶었던 찜질방 사장도 일주일이 넘어가자 당황했습니다.
유례 없는 사태에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 법령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주대책을 놓고 정부와 주민들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서로가, 보는 사람조차 지쳤던 것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질질 끌던 이주 대책 논의가 마무리 되고 연평도 주민들이 김포의 아파트로 이사가던 날. 할머니, 할아버지 여섯 분이 지낼 집에 들어가 봤습니다.
가구도 가전제품도 없는 방에 할아버지들이 이불을 깔고 할머니가 방을 닦고 계시더군요.
"할머니, 아파트 생활 처음이시죠? 고향 생각 많이 나시겠어요..."
저도 모르게 할머니의 '울음' 버튼을 눌러 버렸습니다. 할머니는 걸레를 접던 손을 멈추고 눈가를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찜질방, 아파트를 전전하는 감옥생활이 아니라 탁 트이고 공기 좋은, 옆집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던, 지난 수십 년 동안 할머니와 함께 했던 집은 없어졌습니다.
6.25 전쟁으로 황해도에서 집을 떠나 연평도에 터전을 잡은 이후 또다시 모든 걸 제쳐두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움이고 서러움이었을 것입니다.
한 달을 매일 같이 찜질방 비좁은 공간에 누워 눈물을 삼키면서 버텨온 사람들. 따뜻한 집과 여기저기서 보내준 가전 제품, 온 국민들이 보내준 정성이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김포의 아파트에도 2달 밖에 살지 못합니다.
얼마 전 연평도 주민들이 새해 첫날을 맞는 내용의 기사가 방송됐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저 아픔이 치유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