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발생한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인천을 담당하는 저는 지난 한달 남짓 동안 연안부두 담당이 돼다시피 했고, 이곳에서 연평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
# 지난달 23일, 평화롭던 연평도에 포탄이 비오듯 쏟아졌다는 소식과 함께 연평도에 들어가라는 취재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부랴부랴 연안부두에 도착했더니 불행히도 그날 연평도행 여객선은 이미 떠났고, 연평도는 군의 통제로 어떤 어선도 접근할 수 없는 섬이 돼 버렸습니다.
대신 연평도에서 출발한 여객선을 기다렸습니다. 오후 5시 쯤 도착한 여객선에서 2백여 명이 내렸습니다.
신발을 신지도 못한 채 달려나온 아주머니와 자신의 어머니를 섬에 두고 왔다며 울상이 된 아저씨. 보따리 짐을 든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추운 바닷바람에 몸만 빠져나온 사람들로 부두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그 여객선을 시작으로 피란 행렬은 계속됐습니다. 10여 명이 타는 민간 어선은 60명도 넘는 연평도 주민을 태우고 새벽에 섬을 빠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쓰고, 수시로 방송을 하고,한편으로는 연평도에 들어갈 배편을 알아보며 하루, 이틀이 정신없이 지났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연평도행 여객선 운항이 재개된 부두에는 주민 반 기자 반으로 발디딜 틈 없이 북적였습니다. 주민들이야 포격 이후 집에 들른다지만, 이제 취재를 시작해야 하는 동료 기자들을 보니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게다가 민박집도 문을 닫아서 먹고 자는 것조차 쉽지 않을테니까요. 그렇게 많은 기자들과 주민들이 배를 타고 부두를 떠나니 그때부터 부두는 더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해병대 신축공사 현장에서 숨진 고 김치백씨와 배복철씨의 시신이 그날 부두에 들어왔습니다. 가족들의 눈물도 얼어 버릴 것 같이 추운 날, 고인들은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연평도에서 끝까지 버티던 주민들도 부두에 들어왔습니다. 일흔살 할머니는 십여년간 함께 살아온 동물들을 두고 나올 수 없었고, 50대 아저씨는 면사무소 공무원인 아들만 두고 나올 수 없었지만 사흘째, 하는 수 없이 보따리 짐을 싸들고 4백여 명이 함께하고 있는 인천의 찜질방으로 향했습니다.
배가 정상적으로 운항하면서 피란 행렬은 일단락 됐습니다. 기사를 쓰고, 수시로 방송을 하고, 마이크를 들이 밀었던 저도 마침내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니 사흘간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부두를 거쳐갔습니다. 그 곳에 서 있던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들 때 쯤, 저는 부두를 떠나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례식장과 찜질방으로 향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