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제도화하는 미국
아들: 감당도 수용도 힘든 일이라는 거 잘 알아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게 저예요. 아버지께 말씀드려 주세요. 죽어달라시면 죽어드린다고요.
어머니: 내가 제대로 못해줘서. 널 외롭게 만들어서...
아버지:어떻게 살려구,,,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가려구...
아들 :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 : 아니야, 내가 오만했어. 남의 일로만 알았어. 난 상관없는 일인 줄만 알았어.... 너.. 정말 바꿀 수가 없는 거니.
아들 : (오열...)
아버지: 알았다. 알았어. 미안해. 미안하다.
미국에 와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라마의 대사입니다. 김수현 작가가 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의 드라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드라마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윗 부분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도 몰랐던 성적 정체성,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만 마음이 끌리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 벗어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걸 깨달은 아들이 부모에게 털어놓자, 그런 아들을 내치지 않고 같이 아파하며 보듬어 안으려 하는 부모의 절절한 대화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성적 소수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그런 소수자들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어느 시대,어느 사회에나 이런 소수자들은 존재해 왔다는 게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무조건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바로 오늘 미국에서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금지해왔던 정책을 폐기하는 법안'이 공식적으로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백악관에서 미국 나름대로 역사적인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서명식 현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서명식을 마친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참석자의 모습입니다.

동성애자들의 군복무 권리를 적극 옹호해온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이 서명식 현장에서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의 군목무를 금지하는 정책은 지난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 시행됐습니다. 이른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정책이죠. 영어로는 'Don't ask, Don't tell'입니다. 약자로 DADT라고도 불립니다.
저도 사석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 미국인들을 여러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대단히 중립적인 표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성적소수자들을 부르는 또 하나의 별칭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 정책의 핵심은 ' 스스로 동성애자라는 성적 취향을 밝히지 말라. 상사나 동료들은 다른 사람의 성적 취향을 묻지 말라. 이를 어길 경우에는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전체 동성애자들의 군복무를 금지한 것은 아니죠. 침묵하는 동성애자들은 군복무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공개하지 않는 데 따른 고통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 될 수 밖에 없었죠. 결국 이 정책을 어겼다는 이유로 1만 3천명의 미군이 그동안 군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년 전 대선 때부터 이 정책이 미국의 단결을 저해하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취임한 지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자신의 약속을 이행했습니다. 오바마가 서명식장에서 한 연설 내용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DADT 정책을 마침내 철폐하는 법안에 서명하게 됐습니다. 이 법안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한층 강화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군인들이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도록 해줄 것입니다. 머지 않아 그런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이제 게이츠 국방장관과 멀린 합참의장,그리고 제가 이 법안의 구체적 시행방침을 정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군인들이 이 변화를 체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은 DADT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라고 말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모든 애국자들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이는 나라입니다. 모든 남성과 여성들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믿는 나라입니다. 여러 세대 동안 우리 스스로 이 날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세상을 열어나가게 됐습니다."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미군의 2/3가 동성애자들이 공개적으로 동성애자라고 밝히고 복무한다고 하더라도 미군의 전투력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미군의 절반 정도가 그래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대답을 했다고 해서 본인도 조금 당황하기는 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미군이 가야 할 길이라면서 조속한 의회 처리를 당부하기도 했었죠.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 정책 폐기 법안은 오늘 상원을 통과한 미러 전략무기감축협정 비준안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유층 감세연장 법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달부터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새로운 의회가 출범하는데 그 전에 이번 의회 마지막 회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본인이 의도했던 대부분의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성탄절 휴가를 떠나게 됐습니다.
오늘 하루 미 의회와 백악관을 지켜보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소수자들을 위한 배려가 단순히 배려에 그치지 않고 제도화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군의 동성애자 복무여부는 어떻게 되나 검색해 봤지만 뚜렷한 규정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 10월에 국가 인권위원회가 계간(동성애를 낮춰 부르는 표현이죠)을 금지하고 있는 군형법 92조가 군대내 동성애자의 평등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죄형법정주의등 헌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표명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미국은 그래도 동성애자들이 일부 주이기는 하지만 합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있는 나라이지만, 한국에서 동성애자들은 아직도 숨죽여 살아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죠. 탤런트 홍석천씨가 커밍 아웃을 한 뒤로 오랜 세월 고통을 받았던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유교문화가 오랫동안 자리잡았던 것도 큰 이유겠죠.
다만 이제 경제선진국뿐 아니라 문화와 의식 선진국을 지향하는 수준까지 와있다면 동성애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좀 더 배려하고, 그 배려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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