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부실 법안 많은데···대책은?
국회 홈페이지에는 참으로 많은 정보가 공개돼 있습니다. 이 정보들만 긁어모아도 사실 많은 기사를 쓸 수 있는데요, 소화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전 글의 법안 발의 건수, 처리 현황의 출처도 국회 홈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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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 국회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던 중에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자연환경보전단체의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8월 발의됐는데요, 주요내용은 이렇습니다.
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자연환경보전단체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에 충당하기 위하여 출연금 및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함(안 제3조).
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자연환경보전단체의 육성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국공유재산을 무상으로 대부하거나 사용·수익하게 할 수 있음(안 제4조).
다. 자연환경보전단체에 대하여는「조세특례제한법」등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세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함(안 제5조).
법안 내용을 살펴보니 내용이 아주 알차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런 법도 있을 만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의아했던 건, 이 법안이 8월 25일 발의된 뒤 10월 26일에 철회됐다는 거였죠. 의원실에 전화해 물어봤습니다.
- (기자) 그 법안 왜 철회하셨나요?
=(보좌관) 내용이 좀 바뀐 게 있어서... 다시 발의했습니다.
찾아보니, 철회 직후에 다시 발의를 했더군요.
'자연보호운동조직 육성에 관한 법률안'
주요내용
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자연보호운동단체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에 충당하기 위하여 출연금 및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함(안 제3조).
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자연보호운동단체의 육성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국공유재산을 무상으로 대부하거나 사용·수익하게 할 수 있음(안 제4조).
다. 자연보호운동단체에 대하여는「조세특례제한법」등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세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함(안 제5조).
'자연환경보전단체'가 '자연보호운동조직'으로 바뀐 것 말고는 주요 내용도 같고... 무슨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물었습니다.
- (기자) 이전 법안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보좌관)... 사실 이게 지역에서 민원받아서 낸 법안인데요, 이전 법안은 포괄적이서 여러 단체에 지원이 갈 수 있기 때문에 항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하나의 협회만을 위해서 다시 만든 거죠.

* 이렇게 됐다는 겁니다...
특정단체만을 위해서 이런 법안을 만들 수 있나 궁금해져서 다시 물어봤죠.
- (기자) 그럼 처리는 언제쯤 될 것으로 보시나요?
=(보좌관) 상정이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고.. 법안 자체가 내용이 너무 없어서... 이런 법을 냈다는 것 자체가 의미는 있는 거니까요...
정리하면, 통과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그렇게 노력할 의지도 없지만, 지역에 영향력 있는 단체의 민원 때문에 법안을 냈다... 그렇게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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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법안 철회 현황입니다.

18대 들어 발의했다 철회된 법안 건수도 발의 법안수 증가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었는데요, 이 중에 361건은 2008년 11월 한나라당이 양벌 규정 개정을 위해 법안을 일괄 발의해 강행처리하려다 한꺼번에 철회한 것이라서, 이를 제외하면 89건이 됩니다.
그래도 이미 17대 국회보다는 많죠.
위에 예로 들었던 법 외에도, 의원 발의를 하려면 1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서명했던 의원이 뒤늦게 서명 안 한 것으로 하겠다고 해서 법안을 일단 철회하고, 다른 의원에게 서명받아 발의한 경우도 있고요, 최근의 어떤 법안은, 발의한 법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철회했다가 재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모 방송사에서 의원의 법안 발의 절차를 취재하겠다고 하니까, 이미 발의한 법안을 철회하고 다시 처음부터 법안 만들고 법제실 검토 받고 발의한 것이었습니다. 취재 협조 차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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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발의와 철회가, 일부이긴 하지만 민원 처리 등의 용도로 오용되고, 무성의한 준비로 남용되고 있다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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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돌아왔습니다만, 이전 글을 이어가면, 법안 발의가 그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에는 시민사회의 정치권 감시가 일상화된 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개별 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는데 평가기준은 아무래도 고유 업무인 법안 발의가 되겠고, 발의 건수로 계량화해 평가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원들이 법안 발의 경쟁에 나서게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양질의 법안을 서로 내기 위한 경쟁도 불거졌지만, 남이 낸 법안을 베껴서 약간만 수정해 내거나, 이전 국회(17대)에 냈던 법안을 그대로 다시 내는 등의 '베껴서 건수 채우기'식 법안 발의도 늘었습니다.현재 상황에서 18대 국회가 막을 내린다면 7천여 건의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자동 폐기됩니다.
이제까지의 모습으로 유추컨대, 2012년 18대 국회가 실제로 마감될 때 법안 6천 건 이상은 자동 폐기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발의 법안이 많게 되면, 보좌진 업무나 국회의 업무 부담도 자연히 증가할 것이고요, 상임위에서의 심사 부담도 가중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법안 심사가 소홀해지거나 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 그럼에도 발의는 계속되고...
심사는 부실하게 될 수밖에 없는, 혹은 필요한 법안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악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한 예로, 2008년 18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노인 틀니비용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6개나 발의됐는데요, 2008년 12월 해당 상임위인 복지위에서의 논의를 마지막으로 무려 2년 동안이나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워낙 많은 법안이 밀려있는데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져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데요, 18대 초반에 나타났던 의원들의 높은 관심과 열정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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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들을 담아 지난 12월 18일 <졸속법안 많다>라는 제목의 뉴스가 방송됐습니다.
(☞ 기사는 여기... https://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835103)
기사에 담은 약간의 대안이라면 장기 미처리 법안에 대해서(1년 이상 계류) 별도 처리규정을 만들고 의원 발의 법안도 입법예고를 의무화해 졸속, 날림 법안을 줄이는 방안입니다.
이외에도 국회가 열리지 않을 때도 법안 심사를 할 수 있는 상설 소위원회 설치도 대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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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시작한 글이니 기록 얘기로 마치겠습니다.
18대 국회에서는 법안 발의 건수 외에도, 3년 연속 예산안 강행/날치기 처리 같은 '진기록'도 세웠는데요, 1/4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입법 활동에 있어서만큼은 자성의 목소리와 대안 마련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또 실천에 들어간 그런 기록도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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