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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 vs 종교적 신념' 커지는 논란

입력 : 2010.12.15 09:36

전문가 견해 엇갈려, 강제치료 주장도…씁쓸한 마녀사냥 '부모가 가장 고통'


교리에 어긋난다는 부모의 반대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던 영아가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숨진 사건을 계기로 생명권과 종교적 신념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의료전문 변호사들마저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논란의 핵심이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선택권으로 귀결된다며 '강제 치료'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부모를 살인자로 몰아가며 지나친 비난을 퍼붓는 글이 잇따라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병원에선 무슨 일 있었나 =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숨진 이모 양은 지난 9월6일 좌심실ㆍ좌심방, 우심실ㆍ우심방 사이를 가르는 벽이 없어 대동맥과 폐동맥이 모두 우심실로 연결되는 기형 심장을 안고 태어났다.

이양이 입원 중이던 서울아산병원은 예상보다 심장 상태가 훨씬 좋지 않아 수혈을 동반하는 '폰탄 수술'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는 교리상 수혈은 절대 안 된다며 사실상 수술을 거부했고, 병원은 10월19일 부모를 상대로 법원에 진료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병원 측은 폰탄 수술 1단계인 '노르우드 수술'을 통해 환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무수혈 방법으로 하면 5% 미만이지만 수혈을 하면 30∼50%로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당시 병원 측을 대리한 신현호 변호사는 "이양 체중이 8㎏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무수혈 수술로 생존할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바라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심장 상태가 워낙 심각해 그전에 생명이 위험한 응급 상황이 발생할 공산이 매우 컸다.

생존을 위해서는 폰탄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애초 수술이 50일 이후에나 잡혀 있어 부모의 '수혈 거부'가 이양의 죽음을 불러온 게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총 3단계 수술 중 수혈을 동반하는 1단계 수술은 1주일 이내로 잡혀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마지막 수술은 20∼50일 이후 하기로 돼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 당겨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원은 병원 측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부모는 같은 증상의 환자가 무수혈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적이 있다며 법원의 가처분 결정 효력이 미치지 않는 서울대병원으로 딸을 옮겼지만, 이양은 생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10월29일 패혈증으로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선택권 문제인가…강제치료 주장도 = 이양 부모 측은 무수혈 수술로 생명을 건진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만큼 치료 자체를 거부하거나 생명을 포기한 게 아니라 치료 방법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며 아산병원 측의 주장을 반박한다.

부모 측 대리인인 오두진 변호사는 "무수혈 수술 경험에 따라 병원들 사이에서도 생존율 예측이 다를 수 있다.

결국 수혈 방법으로 하면 생존율이 30∼50%라는 아산병원의 주장도 자의적인 판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의 한 병원에서 최근 발표한 논문을 보면 영아에게는 오히려 수혈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생후 3일밖에 안 된 영아의 심장수술을 무수혈 방법으로 성공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는 무수혈 수술보다는 수혈 수술 쪽에 손을 들어주는 양상이다.

국내 대학병원 출신의 한 의사는 "무수혈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하지만 현재 발전하는 단계에 있을 뿐이지 검증된 수술법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수혈 방법으로 수술했다고 해서 100% 생존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어떤 수술이든 무조건 성공한다고 볼 수 없는 만큼 수혈 방식을 택했다고 해도 이양이 확실히 살았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결국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환자의 선택권,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과 관련해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선택권 문제로 귀결된다.

신 변호사는 "문제는 환자의 선택권이다. 생명이 있어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선택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부모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사망한 아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많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럴 때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사건은 '특수한 상황에서 부모의 신앙과 영아의 복리가 어느 수준까지 양립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신적인 신앙의 문제와 물질적 생명 중 어디에 무게를 둘지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선 마녀사냥…"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부모" =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이양 부모를 '살인자'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식 비난 글이 다수 올라왔다.

그러나 전반적인 과정을 돌아보면 부모 처지에서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면서도 자녀의 생명을 살리려는 방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 보인다는 견해도 많다.

지난 11일 연합뉴스 기자는 충북 청주 근교에 있는 이양 부모의 자택을 찾았다.

걸쇠로 잠겨 반 뼘 정도만 열린 현관문 틈 사이로 20여 분간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양의 어머니 김모씨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끊는 심정을 수차례 내비쳤다.

김씨는 "딸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미로서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태어나고 예상보다 훨씬 더 상태가 심각해 수혈을 동반하는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며 울먹였다.

현재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엄마가 아이를 잃었는데 기분이 어떨 것 같나"고 되묻고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문틈 사이로 세발자전거를 타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거실을 누비는 한 어린아이가 보였다.

이제는 외동이 된 세살배기 아들이었다.

김씨는 "저 아이도 뱃속에 있을 때 선천적인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아 크게 걱정했는데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났다. 첫째라도 건강하게 잘 자라줬으면 한다"고 했다.

종교적 신념만 달리하고 있을 뿐 김씨의 자식을 향한 모정은 다른 어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박효종 교수는 "사회적 지탄의 여지는 있지만 의무를 포기한 부모라고 볼 수는 없다.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도 "아이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은 분명하나 그 결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그 부모임을 이해하는 동정의 시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