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부당거래'의 관람객 수가 3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탁월한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극적 결말에 멜로 코드는 아예 없는 영화가 이렇게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이례적입니다.
저도 영화를 봤는데요, 경찰과 검찰, 또 업계를 모두 출입하며 취재해본 경험에 비춰볼 때 상당히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실감나게 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한 명의 검사, 한 명의 경찰관에게 그 많은 사건이 겹쳐서 일어나기는 어렵습니다만, 여러가지 있을 법한 일들을 한 검사, 또는 한 경찰에게 투영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사실적이고 설득력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례적 인기의 원인은 그런 '리얼리즘'에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럴 듯하다고 공감한 부분은 결말입니다. 부당거래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비명횡사하고 처절하게 응징을 받는 반면 주양 검사는 비록 옷을 벗게 됐지만 끝까지 '생존'합니다.
부당거래에 나온 '악당'들 가운데 죄질이 가장 나쁜 축에 속하지만 그에 대한 처벌은 가장 경미합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강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도 대부분 그렇게 돌아갑니다.
당장 최근 결말을 맺은 '그랜저 검사' 사건도 그 내용이나 전개가 영화 '부당거래'와 비슷합니다. 사건 내용은 수차례 소개해드렸으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단, 주인공 정모 전 부장검사의 범죄 혐의만 최종적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정 전 부장검사는 후배 도모 검사에게 친구 건설업자의 사건을 '잘 봐 달라'고 청탁을 한 뒤 그랜저 승용차 구입비를 대납시켰습니다. 그런데 특임검사의 재수사 결과 정 전 부장이 받은 것은 이 승용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친구 건설업자의 고소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된 2008년 5월 그 건설업자로부터 용돈 명목으로 2백만 원, 건설업자의 바람대로 피고소인들이 모두 기소된 직후인 같은해 6월 일본 여행경비라며 2백만 원, 다음달 같은 명목으로 3백만 원, 같은해 9월에는 추석 선물이라며 2백만 원, 그해 12월 하순에는 연말연시 선물이라며 2백만 원, 그리고 2009년 10월 또 일본 여행을 간다며 5백만 원….
이쯤되면 스폰서로부터 고급 명품시계를 받은 주양 검사의 행위는 애교로 보일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 전 부장검사의 부탁을 받은 뒤 문제의 고소 사건을 수사한 도모 검사실의 수사계장 최모 씨는 건설업자로부터 1천만 원을 받은 혐의가 확인됐습니다.
바라던대로 피고소인들을 기소해준 데 대한 대가라는 것이 특임검사의 판단입니다.
'부당거래'에서 주양 검사실에 근무하던 검찰 수사관은 어리버리한 행동으로 큰 웃음을 줬죠. 하지만 현실에서 검사실 수사계장은 사건 처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수사의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수사계장의 조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그런 수사관이 대가를 받고 진행한 수사란 그다지 신뢰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1, 2, 3심에서 모조리 무죄를 받은 것은 그렇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지난 7월 종결됐던 첫번째 검찰 수사에서는 이들 중 누구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랜저 승용차가 오간 것만 드러났고 그 차 값도 나중에 갚았기 때문에 단순한 대차관계로 봤었다고 검찰은 해명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내용에 대해 수사를 하고 내린 결론이 특임검사와 정반대였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습니다. 백 번 양보해도 처음 수사는 대단히 부실했거나 진실을 밝힐 의지 없이 진행됐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정 전 부장검사는 옷만 벗는 것으로 귀결됐고 최 수사관은 아예 수사 대상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SBS가 이 문제를 끄집어내 보도함으로써 재수사가 이뤄졌고 그래서 정 전 검사는 구속 기소, 최 수사관은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어느 정도 검찰의 오류가 수정된 셈이지만 여전히 '부당거래' 속 현실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지난 7월 부실한 수사로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내린 수사라인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 담당 수사관이 '돈'을 받고 처리한 애초의 고소사건 수사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점입니다.
특임검사가 2주 동안 그저 정석대로 문제의 건설업자의 사무실과 주거지를 압수수색하고, 관련 계좌를 조금 추적했더니 이렇게 금방 밝혀질 일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해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불신을 불렀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일반 고소 사건 수사에서 일방을 무리하게 기소하면서 그 과정에 백수십억대 사업권이 청탁한 건설업자에게 넘어가고, 문제의 형사 재판은 퍼펙트하게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알고보니 수사관은 청탁자로부터 돈까지 받았는데도 해당 수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나요? 재수사를 하더라도 전직 검사와 검찰 수사관은 '죽을 수' 있지만 현직 검사들은 꿋꿋이 '살아 남는' 것입니다.
'부당거래' 속 주양 검사는 징계를 받으러 가면서 법조계 실세인 장인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러자 실세 장인은 "사내 대장부가 그만한 일로 기죽으면 되나? 어깨 펴!"라며 오히려 위로를 합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가슴 한구석에 '휑'하고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법의 심판은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하다는 말이 한낱 구두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순히 영화 속에서나 벌어지는 과장된 허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현실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 아닙니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