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FTA 협상에 대해 A 플러스를 주고 싶다"
지난 2007년 4월 2일 미국과 한미 FTA를 타결시킨 뒤 당시 협상수석대표인 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했던 말입니다.
그 당시 우리가 가장 내세웠던 한미 FTA의 성과는 바로 자동차와 섬유였습니다.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투자자 보호조항, 금융시장 개방, 4대 선결조건(스크린 쿼터와 쇠고기 등에서 양보) 등을 지적하며 "잘못된 협상" 이라고 했지만 제조업에서 얻을 국익이 더 크다는 설명이었고 객관적으로 자동차와 섬유는 협정이 발효되면 상당한 이익을 얻고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미 FTA는 양국이 서명해 체결까지 했지만 양국 의회, 특히 미국 의회에서 3년 8개월 이상 표류해 왔고 결국 미국측의 요구로 한미 FTA 추가협상을 해 이제 추가협상을 타결했습니다.
추가 협상 타결 내용을 보면 큰 틀에서 우리는 자동차 분야를 양보하고, 돼지고기와 제약 분야에서는 일정부문 실리를 챙겼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가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큰 협상이라는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습니다. 비록 정부는 '윈-윈'한 협상이라는 주장이지만 자신들이 'A플러스'라고 평가했던 협상을 손대면서 스스로 성적을 떨어뜨렸다는 점을 간과하고 억지를 부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표류했던 한미 FTA가 이번 추가협상으로 미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면 한미 FTA에 따른 전체 득실은 우리에게 이로울 수 있지만 이번 협상을 잘했다는 식으로 본질을 호도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추가 협상에서 다급한 쪽은 미국이었고 성과에 대해 조바심을 내는 쪽도 미국이었는데 추가 협상에서 내줬던 내용을 보면 우리가 협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럼 하나 씩 따져 보겠습니다. 먼저 이번 추가 협상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자동차 분야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드리면 어느 나라와 하든 FTA를 체결하려는 가장 큰 목적은 가급적 빨리 상대 국가의 관세를 낮춰서 우리 수출업체들이 상대 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갖고 물건을 더 팔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2007년 한미 FTA 협정에서는 이를 위해 자동차 분야에서 소형차 시장은 바로 우리 차가 미국에서 공세를 취할 수 있게 했고 대형차의 경우 3년의 관세철폐 유예기간을 뒀습니다. 쉽게말해 소나타 같은 배기량 3천CC 이하 승용차는 FTA가 발효되면 바로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도록 해 미국의 관세인 2.5%만큼 가격을 낮춰 팔 수 있도록 했고, 제너시스처럼 배기량 3천CC를 넘는 차는 발효 후 3년 내에 관세를 폐지하도록 한 겁니다.
하지만 이번 추가 협상에서는 배기량에 상관없이 관세 철폐시기를 4년 미뤄서 FTA가 발효된 뒤 5년째가 되는 해부터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미국 자동차 업계는 시간을 번 셈이고 우리 자동차 업체들은 미뤄진 시간만큼 미국 시장에서 물건을 더 팔 기회를 날린 것입니다.
또, 미국 자동차 업체가 기술력이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관세철폐 시기는 당초 10년에서 5년 내로 앞당겨 미국의 전기차가 국내 시장을 보다 일찍 공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미국이 우리의 비관세 무역장벽이라고 불만을 갖고 있던 안전이나 환경기준 등에선 미국 차가 사실상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미국 차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가 포드인데 한 해 2천대 정도 밖에 안 되기때문에 어떤 기준으로도 미국 차는 우리가 요구한 안전과 환경 기준을 맞출 필요가 없게 된 겁니다.
결국 미 의회가 한미 FTA 비준을 미뤄 추가 협상까지 왔기때문에 자동차 부문을 일부 내주는 방식으로 미 의회를 달래겠다는 취지로 우리가 양보를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미국 판매량 가운데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이 갈수록 증가해 현재 47%를 육박하는데다 올해 40억 달러의 대미 수출이 예상되는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경우 발효 즉시 관세가 철폐 돼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이 미국 현지 생산비중을 늘리는 것은 사실 한미 FTA 득실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봐야합니다. 현대차가 미국 현지에서 물건을 생산하면 미국 차로 분류되기때문에 한미 FTA가 발효되지 않더라고 이익에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관세 철폐 시기가 늦춰지면서 현대기아차로서는 국내 생산보다는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게 될 인센티브가 생기게 됐고 이 말은 국내에서 생길 수 있는 일자리가 미국 현지 생산으로 미국에서 생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일자리 측면에선 손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추가협상에서 얻은 부분도 있습니다. 당초 보수적인 협상 전문가들 조차 금융위기로 사정이 달라졌으니 추가협상에서 금융부문의 안전장치 확보 등 뭔가를 더 얻어내거나 오렌지 등 농산물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야한다고 했지만 그런 부분은 수용되지 못했고 돼지고기와 제약, 그리고 미국에 파견된 한국 근로자들의 비자기간을 연장하는 정도를 얻어냈습니다.
우선 돼지고기를 보면 미국산 돼지고기가 무관세로 국내에 들어오는 시기를 2년 늦췄습니다.
국내 시장에 경쟁력이 있는 미국산 냉동목살의 가격 인하 효과를 그만큼 늦춰 국내 양돈 농가가 경쟁력을 확보할 시간을 벌 수 있게 한 거지만 규모가 그리 크진 않습니다.
한미 FTA로 타격이 불가피한 국내 제약 업계도 추가 협상에서 약간의 혜택을 봤습니다.
의약품은 협정이 발효되면 10년 안에 현재 8% 정도인 관세가 사라져 미국 의약품이 더 싸게 국내시장에서 팔리게 됩니다. 특히 미국 등 다국적 제약회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해 국내 업체가 복제약을 만들려고 할 때, 미국 회사가 승낙하지 않으면 복제약 생산을 금지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의약품-특허 연계제도라고 합니다.
당초 협상에선 미국 회사가 생산금지를 요청해도 18개월은 생산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 협상에서 그 기간을 3년으로 늘렸습니다. 한국 제약업체들이 복제약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을 늘린 것이니 그만큼 제약업체들에게는 이익입니다.
다만 돼지고기나 제약분야 모두 단지 시간을 번 것 뿐이고, 우리 업계가 잘해야 결국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추가 협상 수지를 따져보면 우리는 현금을 내주고 어음을 받은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추가 협상에서 받아들인 몇 가지 조항과 원칙 훼손이 장차 우리의 뒷다리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 걱정입니다. 가장 잠재적 불안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이번 추가협상에서 도입된 자동차 분야 긴급 수입제한 조치입니다.
쉽게말해 우리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미국에서 협정을 무시하고 다시 우리 승용차에 특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점차 국내 업체의 미국 현지 생산이 늘고 있어 긴급 수입제한 조치가 발동될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긴급 수입제한 조치가 발동됐던 다른 품목의 과거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해당국 업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발효되는 경우가 많고, 힘의 논리가 작용하기때문에 실제 앞으로 어떻게 적용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미 자동차 업계가 한국 차 판매가 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미국 정부를 부추겨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 가드)를 발동하게 해 일시적으로 경쟁력을 훼손하고 우리 업체가 소송 등을 통해 시간과 비용을 손해보도록 압박할 수 있습니다. 발동 횟수도 무제한입니다.
이번 협상에 대해 'A플러스'를 줄 수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죠.
또다른 문제는 이미 한미 양국이 서명한 FTA 협정 내용을 다시 일부 손 봤다는 점입니다. 과연 우리와 FTA를 체결한 EU 같은 나라들이 그냥 잠자코 있을 지 의문입니다. 한미 FTA 협상 수준을 요구하면서 이미 체결된 한-EU FTA도 추가 협상을 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추가 협상 직후 미 상원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주무 상임위인 재무위원장 보커스 의원이 쇠고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상원 비준을 반대하겠다고 나선 것도 꺼림칙합니다. 만약 미국이 자동차를 얻었으니 이번에는 쇠고기도 내놓으라면서 다시 추가 협상을 요구한다면 국내 반발 여론과 맞물려 상당한 후폭풍도 예상됩니다.
막연한 감이지만 여기가 긴 시간을 돌아온 한미 FTA의 종착역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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