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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회, 언론 3박자 말장난과 진실

김요한

입력 : 2010.12.17 15:18

국회와 검찰, 언론을 돌아보며


실속이나 내용이 없이 쓸데없는 말을 그럴듯하게 엮어 늘어놓는 것을 일컬어 '말장난'이라 한다. 지난 2년간 법조를 출입하면서 이 말장난에 답답했던 경우가 꽤 있었다. 가끔씩은 단순한 답답함을 넘어 '이게 말장난의 위력인가' 싶은 경우도 적잖았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간단하고 명쾌한 문제도, 말장난에만 휘말리면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말장난의 마력에 심취한 나머지 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법조문의 자구해석에만 몰두하다 사건의 실체가 분해되는 경우 쯤 될까. 말이 길고 어렵다. 예를 좀 들어 보자.

검찰의 청목회 수사가 한창이다. 사건의 핵심은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입법 대가로 전국 청원경찰 친목협의회(청목회)로부터 받은 돈의 불법성 여부다. 사법기관에 불려온 사람들치고 "잘못했다"고 자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던가. 그래서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던 사건 초반, 여론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느닷없이 영장이 문제가 되더니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검찰이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을 복사해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은 영장 부본을 집행한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영장의 부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영장의 원본과 부본의 명확히 구분한 것은 아니지만, 수통 청구 절차가 있는 만큼 영장은 정본으로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찰은 영장 집행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진땀 꽤나 흘렸을 거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사건의 쟁점은 후원금의 대가성을 따지는 것에서,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지까지로 확대되고 말았다. 실로 대단한 헛발질이 아닐 수 없다.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 대부분은 영장 부본 논란을 수사 경험이 부족한 검찰의 실수라 판단하고 있다. 법원이 압수수색의 정당성을 인정해 허가한 이상, 사본 집행을 통해 검찰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해진 절차를 엄수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뒤엎을 만큼 엄청난가? 국회의원들의 뻔뻔함에 손발이 오그라들 따름이다. 칠판 앞에 불려 나와 수학문제를 풀던 학생이 분필가루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해악을 따져 물으며 "문제 못 풀겠다"고 버티는 꼴과 뭐가 다른가."니네도 잘못했으면서, 왜 우리보고 뭐라 해" 유아적인 국회의 태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 쯤 되겠다.

압수된 자료가 증거로 쓰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법원에서 따지면 될 일이고, 국회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드러나도록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마땅하다. 검찰이 대상을 가려가며 수사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기회를 잘 포착한 국회의원들의 말장난 덕분에, 애먼 국민들만 좌우로 나뉘어 서로 싸움질을 해대고 있다.

이렇듯 국회는 단연 말장난의 선두주자라 할 만하다. 실속이나 내용이 없어도 그럴듯하기만 하면 판을 뒤흔들 수 있는 말장난의 마력을 수 십 년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어떨까? 자유로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놈이 그 놈'이다. 고소인에게 청탁 대가로 그랜저를 받은 부장검사, 어이없는 이 사건을 수사하고도 슬그머니 덮어버린 수사팀. 이 팀은 지난 7월에는 ‘특별수사팀’이라는 명패를 달고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했다. (지금 욕을 먹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증거가 모두 훼손돼 기소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 재수사는 어렵다"… 수 년 전 지인과의 골프 흔적, 리조트를 빌려 쓴 사실까지 낱낱이 밝혀내며 뒤죽박죽 진술도 충분히 의심할만 하다며 기소하던 검찰의 이런 설명은 참으로 군색하기가 이를 데 없다.

총리실 보고자료가 훼손됐다면, 보고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장소는 압수수색 할 수 없나? 50군데가 넘는 압수수색,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높으신’ 의원 나리들을 그토록 엄격히 다룬 것이라면, 정권의 실세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엄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사의 허점을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테니 이 쯤 하자. 검찰의 복잡하고 군색한 설명은, 쉽게 그냥 한마디면 된다. "수사 안 할 건데요" 검찰은 본인들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이 국회와 검찰을 '그 놈이 그 놈'이라 여기는 이유다.

그럼 언론은 말장난의 마력에서 자유로운가? 모든 언론이 썩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항상 올곧게만 말하고 행동해 왔다고 주장할 염치는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말지. 언론 역시 힘 있는 조직에 붙어 적당한 수준에서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는 손가락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는 법, 그래서 넘쳐나는 말장난의 홍수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말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답은 의외로 명료하고 간단하다. 물론 그 간단한 답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때론 용기도 필요하고, 때론 목숨도 걸어야 한다. 힘을 가진 조직일수록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큰 칼을 휘두르기는 국회도 검찰도, 법원도 언론도 모두 마찬가지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말장난'을 멈추고 내실을 담자. 말장난의 향연에서 이제 다들 그만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