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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회수사3] 국회와 검찰, 욕 먹을 놈들은?

김요한

입력 : 2010.12.17 15:18|수정 : 2010.12.17 17:25

누구를 욕하고,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복사기>가 없었으니까!

잠깐 삼천포 좀 들렀다 가겠습니다. 그럼 형사소송법에는 왜 영장의 원본과 사본을 구별해 놓지 않은 걸까요? 법조항에 <원본>이라는 단어 하나만 넣었어도 이런 시비는 없었을텐데 말이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복사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형사소송법은 형사 절차에 관한 법률입니다, 1954년 9월 23일에 만들어졌죠. 그런데 이때는 복사기가 없었습니다. 당시 사본이라 함은 통상 베껴 적은 문서를 의미했습니다. 옮겨 적은 문서는 -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해도 - 원본과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등본이라는 게 생겨난 이유도 그래서고요. <원본과 같음을 관청이 확인했으니 효력도 동일하다>는 뜻이지요.

형사소송법이 제정되던 1954년 당시에는 영장의 원본과 사본을 굳이 나눠 적시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기계적으로 똑같은 모양의 복사본이 존재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는 영장을 여러통 청구하도록 정해뒀던 것이고요. 좀 이해가 되시죠?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형사소송법상 <영장>은 영장 원본을 뜻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음모일까? 실수일까?

그럼 문제는, 검찰이 왜 그랬느냐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압수수색 장소를 여러 곳 청구하면 기각 당할까봐 슬그머니 한 장만 청구했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사실 그건 아닙니다.

검찰이 청구하는 압수수색 영장에는 죄명과 압수할 물건, 수색할 장소, 유효기간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이미 법원이 50여 군데 압수수색을 해도 좋다고 허가한 경우라면 단순히 만들어야 할 영장의 장수가 많고 적음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법원이 만들기가 귀찮다고 기각 여부를 고민하는 일도 없고, 검찰이 그것을 고려해서 한 장만 밀어 넣을 일도 없다는 거지요.

정치인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정치인들이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들으면 사실 좀 웃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고의성은 없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검찰이, 아니 더 자세히는 영장을 청구한 담당 검사가 실수한 겁니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크게 문제 삼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복사해서 사용을 한 거죠. 물론 검찰은 공식적으로 "별 문제될 것이 없다"며 표정관리를 했습니다만, 내부적으로는 영장을 청구했던 담당 검사 분이 꽤 크게 혼이 나셨을 겁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법무부 장관의 "영장 부본도 문제없다"는 발언은 잘못 됐습니다. "부본 집행에 큰 문제가 없다" 검찰 발언도 엄격히 따지면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 검찰이 거짓말을 했으니 검찰을 비난하고 욕해야 할까요?

글쎄요. 그렇게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그 이유는 영장을 발행해 준 북부지법이나, 대법원이 침묵하는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달을 볼까? 손가락을 볼까?

검찰이 압수, 수색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도록 한 이유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가기관이 개인의 신체나 재산에 대한 체포, 구금, 압수, 수색을 할 경우 반드시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가기관이 국민을 수색하거나 물건을 압수할 경우, 그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말이지요. 기본권을 해치지 않는, 꼭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압수수색을 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다는 뜻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의심이 되니 이 정도 선에서는 압수, 수색을 해도 좋다"고 허가를 해 줬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범죄혐의에 대한 진실을 가려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회가 발끈한 이유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는 것이고요. 검찰은 "절차상 일부 실수가 있긴 했지만 고의성도 없었고, 그 실수가 영장 발부의 본래 목적을 침해하지도 않을 만큼 경미하니 <침소봉대, 생트집>과 다르지 않다"라며 발끈하는 겁니다.

훈수 두는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 생트집이 맞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절차적 정당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놓고 욕할 정도는 아닙니다. 법원은 국회 편을 들자니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야 하는 본래 목적을 망가뜨리게 생겼고, 그렇다고 검찰 편을 들자니 "절차상 실수 좀 있어도 괜찮다"고 인정해주는 꼴이 될 수 있으니 난감한 겁니다. 그래서 그냥 공식적인 발언을 자제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거지요.

증거능력, 있을까 없을까?

그럼 이제 문제는 검찰이 압수한 물건들이 증거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로 옮겨갑니다.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확보된 증거이니 증거능력이 없을까요? 아니면 고의성이 없고, 심각한 실수는 아니었으니 절차상 하자는 인정되지만 증거능력은 인정이 될까요? 조금 답답한 대답이 되겠습니다만, 이 건 재판을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이번에 압수한 물건들 뿐만은 아닐테니, 이 압수수색 사건만 가지고 재판 결과를 예측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재판에서 이 부분이 쟁점 중 하나로 다뤄질 것임은 분명하지요. 대법원에서 확정되기까지는 아마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정도 걸릴 겁니다. 끓었다 식었다 요란한 우리 국민들이 1, 2년 뒤에까지 이 이슈를 기억해 두었다가 판결 결과에 반응하지는 않을 겁니다. 재판하는 판사분들, 수사를 진행하는 검사분들 사이에서만 꽤 의미있는 판결이 되겠지요. 결과가 어찌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누구를 욕해야 하나?

사실, 이번 영장 사건의 승자는 검찰도 국회도 아닙니다. 둘 다 할 말이 없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을 진행하면서 (별로 어렵지도 않은) 수통청구를 하지 않아 책을 잡힌 검찰은 물론이고요. (그래서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중앙지검이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 수사 경험이 부족한 북부지검이라 실수한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어차피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이 '원본이냐 사본이냐'를 두고 이게 마치 대단한 음모인 것처럼 부풀려 생떼를 써대는 국회는 치졸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칠판 앞에 불려나와 수학 문제를 풀던 학생이, 느닷없이 분필가루가 학생들의 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논하면서 문제를 못 풀겠다는 것과 비슷한 거죠. (요즘엔 가루 날리는 분필 안 쓰나요? 구닥다리 비유라도 이해해 주시길 ^^)

솔직히 이번 사건으로 그림 같은 슛을 날린 선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용병인 변호인입니다. 검찰의 이 부분 실수를 짚어낸 것은 정말 탁월했다고 볼 수 있는 거지요. 어차피 변호사의 역할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니까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논외로 합시다. 그건 검찰이 입증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렇듯 가끔 보면, 법리적인 공방과 그에 따른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오히려 본질을 흐리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 말을 듣고, 누구를 나무라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으니까요. 그럴 수 있도록 쉽게 정리해 전달해 드리는 것이 저희 언론인의 몫이겠지요. "언론 너희도 이해관계에 따라 편들기 장난 아니잖아!" 이런 비난을 하시는 분들도 많으신 줄은 압니다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끝까지 공정함을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