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의 윤향란 개인전
어쩌다 구한 귀한 배추로 김치를 아무리 열심히 담가도 어머니가 담근 김치만한 맛은 나지 않아서 더욱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윤향란의 배추 그림은 캔버스에 붙인 종이에 파스텔로 배추를 그리고, 그 종이에 물을 묻혀 다시 뜯어낸 뒤 새로운 캔버스에 붙여서 구성한다. 작가는 종이를 붙였다 뜯었다 하면서 배추를 표현해가는 과정이 마치 김치를 버무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힘찬 파스텔 선으로 그려진 배추 속살, 배춧잎들이 뿜어내는 생명력!!

작가가 고국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왜 배추 그림에 담아냈는지,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
내가 영국에서 자주 이용했던 테스코 슈퍼마켓에는 British Chinese Cabbage로 불리는 영국산 배추 판매대는 있었으나 물량이 없을 때가 많았고, 그나마 있을 때도 한국의 배추같이 속살이 통통한 것은 없었다.
가끔 영국의 재래시장에서 한국산 배추와 비슷하게 생긴 통통한 배추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웠던지. 배추 사들고 집에 오는 날은 괜히 흐뭇해 혼자 미소짓곤 했다.
한국에서 한 번도 안 담가본 김치를 영국에서는 자주 담갔다. 김치 담가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나면 부자가 된 듯 마음이 충만해지곤 했고, 어머니가 '김치 새로 담근 날은 저금을 많이 한 것 같다'고 하시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윤향란의 배추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영국에서 서투르게나마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려 김치를 담그던 과정이 떠올랐다. 
세금 신고서와 작가 등록증, 보험 서류, 각종 영수증 등 외국인으로서 프랑스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각종 서류 위에 자유롭게 붓질을 한 작품(위)도 눈에 띈다.
작가는 이방인의 고단한 프랑스 생활이 녹아있는 이 서류들을 버리지 않고, 이 위에 푸른색 물감으로 마음껏 붓질을 했다. 작가는 '서류 위의 붓놀이'라는 이 작품 제목대로, 한바탕 붓놀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쏟아내고 다시 희망을 갖자고 자신에게 다짐했다고 한다.
유효기간이 지나 그냥 버렸으면 쓰레기가 돼버렸을 서류들인데, 이방인이 겪는 삶의 애환을 그 자체로 담아내는 캔버스가 된 셈이다.
학고재의 윤향란 전. 이방인의 삶을 잠깐이나마 체험했던 나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 의미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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