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외규장각의 운명에 대해 글을 올렸는데, 다행히 바람대로 G20에 맞춰 협상이 타결됐네요. 우리가 '영구 대여' 방식을 양보한 대신, 프랑스는 '등가 등량의 상호교환' 방식을 양보했습니다.
5년 단위로 갱신하는 '대여' 형식이지만, 사실상 한국에 반환한다는 것입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돌려받을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합니다. 협상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서로 한 발씩 물러나 win-win한 셈이죠.
물론 그 win-win의 이면에선 양보에 대한 양측의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경우 약탈당한 문화재를 '대여'라는 명목으로 들여오는 것에 대해 문화단체들이 굴욕적인 협상이라며 반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야 받는 입장이니까 반발이 있더라도 가져온 다음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겠지만, 문제는 프랑스 측의 반발입니다. 자칫 반환이 지연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외규장각 도서 296권(전체 약탈 도서 297권 가운데 <휘경원원소도감의궤>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의 협상 당시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수와 미테랑 국립도서관의 간부와 사서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12명의 도서관 간부들이 인터넷을 통해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형식상 '대여'라고 하지만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200명 가까이 이 성명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립도서관 직원들의 집단 반발이 신경 쓰이는 것은 지난 1993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TGV를 한국에 판매하기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려고 했던 미테랑 대통령의 의지를 좌절시킨 것이 바로 이 국립도서관 직원들이었던 것입니다.
1993년 방한을 앞둔 미테랑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과 관련해 아무런 내부 동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초고속 철도(지금의 KTX)를 추진하고 있던 한국에 TGV 방식을 판매하기 위해 방한하면서 빈 손으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립도서관 사서 두 명을 수행단에 포함시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들고 오게 했습니다.
프랑스를 출발할 때도 그렇고 한국에 가서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에도 국립도서관 사서 두 명은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아예 줘버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회담 직전에 두 명의 여자 사서가 <의궤>를 담은 상자를 껴안은 채 줄 수 없다고 버텼고, 결국 프랑스 대통령실 직원들이 강제로 상자의 열쇠를 부순 뒤 정상회담장으로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의궤>를 줄 수 없다며 울고불고 버텼던 두 명의 사서는 결국 프랑스로 돌아와 국립도서관에 사표를 냅니다. 대통령이 문화재를 반출하면서 현행법을 어겼고, 또 이를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는 주장이었죠. 여기서 촉발돼 당시 국립도서관 직원들이 총파업을 벌이며 반발했고, 언론들까지 문제를 삼고 나서자 미테랑 대통령은 반환 협상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17년을 끌어 왔습니다.
국립도서관 직원들은 대통령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현직 대통령을 범법자로 만들 수는 없다며 한국으로 돌아간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대출’로 처리했습니다.
그 때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들고 한국에 왔다가 돌아가서 사표를 냈던 여자 사서 두 명은 그 후 사표가 반려됐는데, 한 명은 현재의 국립도서관 부관장(자끌린 상송)이고 또 한 명은 이제 현역에서 물러나 ‘명예 전문사서’(모니끄 코엔)로, 이번에 성명을 주도한 12명 가운데 한 명입니다.
자끌린 상송도 대표적인 반환 반대론자이긴 하지만 지금은 부관장 신분이라서 이번 성명에는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립도서관의 반발이 우리에게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자면, 1993년과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당시에는 좌우 동거정부로 내각이 우파였기 때문에 좌파인 미테랑 대통령의 목소리가 문화부나 국립도서관으로 먹히기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대여 후 연장’이라는 합법적 틀에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 여부 논란도 당시보다는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받아 놓아야 안심이 되는데, 이런 반발 때문에 논란이 커지면서 혹시라도 일정이 지체될까 우려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P.S. 이 국립도서관과 미테랑 대통령, 외규장각 도서는 질긴 인연인가 봅니다. 미테랑 대통령이 사망한 뒤 새로 건립된 국립도서관의 이름을 프랑수와 미테랑 도서관으로 바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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