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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극장 무대는 왜 기울었을까?

남주현

입력 : 2010.11.01 20:46


출장길에 오르게 된 것은 우리 국립발레단이 모스크바에 있는 볼쇼이극장에서 볼쇼이발레단과 사상 첫 '합동 공연'을 하게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그것도 한국 무용수들이 주역으로 선 공연을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참 의미 있는 러시아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출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볼쇼이 발레단 부설 발레학교 취재였지요.

발레학교를 취재한 내용을 갖고 명품 발레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8뉴스 리포트도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뉴스가 나간 뒤 "그래서 대체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리포트를 보고도 시청자들이 여전히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기자에게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의 완결된 리포트를 봤을 때,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도록 완결된 내용을 전달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지적을 받았으니, 속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취재파일을 통해서 짧게나마 변명 혹은 부연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1분 30초라는 시간 동안에 소개하기에 발레학교라는 아이템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기사가 압축적이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들고, 동시에 '비결'이라는 단어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드니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러시아가 발레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비결, 명품 발레를 계속 선보이고 있는 비결이 바로 '발레학교' 그 자체입니다. 리포트를 보고 질문을 던지신 분들은 "그래서 발레학교에서 가르치는 비결이 뭔데?"라고 하시는데, 우리나라에는 없는 그 시스템 자체가 발레 강국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만 10살의 발레 영재들이 발레학교에 입학해 국비로 8년에 걸쳐 차근차근 단계별로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기초가 튼튼한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 매년 꾸준히 배출되기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단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죠.

러시아의 발레학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비결, 즉 2,3년 만에 속성으로 가르치는 족집게 식의 특수교육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볼쇼이'와 '바가노바' 각각의 발레학교 나름의 독특한 교수법은 있지만, 차근차근 단계별로 이뤄지는 기초교육이 그 핵심이죠. 실제로 한국에서 발레를 공부하다 유학간 한국 학생을 만났는데, "발레학교에서는 학년마다 배우는 동작의 범위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기준이 없이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교육을 하는 경향이 있다. 기본을 다지고 테크닉으로 넘어가는 체계가 좋은 것 같다"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리고 소위 '비결'이 될 만한 것을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18살에 바로 프로로 데뷔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겁니다. 볼쇼이 발레학교 학생들은 여섯 달 동안 작품을 준비해서 1년에 두 차례, 일종의 경연대회를 한다고 합니다. 예선, 본선을 거쳐 진행되는 이런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무대 경험을 쌓게 한다는 것이죠. 그 밖에도 볼쇼이발레단의 공연에 학생신분으로 참여하는 기회도 종종 있다고 하죠.

학생들이 언제든 볼쇼이 무대에 서서 평소와 똑같은 기량으로 춤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볼쇼이 발레학교의 연습실도 볼쇼이극장과 비슷한 구조로 돼있습니다. 러시아의 오래된 극장들은 러시아 황제를 위해 세워졌기 때문에 객석 쪽으로 기울어진 구조인데, 객석에서 보기에 이런 무대가 훨씬 규모감 있고 무대 전체를 바라보기에 편안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병을 올려놓으면 앞으로 굴러 떨어질 정도로 기울기가 상당해서, 처음 볼쇼이 무대에 서는 무용수들은 몹시 당황합니다. 그래서 볼쇼이 발레학교는 학생들이 기울어진 무대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연습실을 똑같이 경사진 형태로 만든 것이죠. 처음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뭔가 공사가 잘못됐거나 건물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하면, 짐작이 가실까요.

써놓고 나니, 역시 대단한 비결이랄 것은 없습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비결'이란 것은 입시 발레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발레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고난도 테크닉을 익힌다던가, 단기간에 유연성을 기른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죠.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 장르가 그렇듯이 발레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발레교육을 하는 발레학교 자체가 명품 발레의 비결인 셈이죠. 이 글로 여러분의 궁금증만 또 한 차례 커진 게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