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ㆍ태광그룹의 비자금 의혹을 규명하는 검찰 수사가 올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건을 맡은 서울서부지검이 수사 장기화 개연성을 인정한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의혹의 정점에 있는 핵심 관련자에 대한 조사 일정조차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부지검은 차명 주식과 계열사 거래 등 경로로 조성된 두 그룹의 부외자금 규모를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지만, 아직 비자금의 용처와 정관계 로비설 규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일 검찰에 따르면 서부지검은 한화와 태광 그룹 사무실 등에서 압수한 회계서류 등 관련자료 수백 상자를 분석하며 비자금의 정확한 규모와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서부지검은 최근 금춘수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과 오영일 태광산업 부회장 등 그룹 '2인자'를 동시에 소환 조사해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에는 다시 '숨 고르기' 단계로 돌아갔다.
김승연 한화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소환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다'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수사가 이처럼 급물살을 타지 못하는 것은 비자금의 조성 경로가 문어발식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은 증권사 차명계좌에서 10∼20년 동안 계열사 주식이 거래된데다 관계사(社)의 내부거래가 악용된 정황도 있어 자금 추적이 까다롭다고 한다.
태광그룹 사례에서는 주식과 예금, 부동산, 보험, 계열사 자산 등 거의 모든 부외자금 조성 수법이 총동원돼 돈의 규모를 밝히는 데만도 수십 상자 분량의 자료를 더 분석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 서부지검 관계자는 "깜깜한 방(房)에 수많이 흩어진 바늘을 찾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며 수사 장기화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서부지검 안팎에서는 두 기업에 대한 수사에 최소한 서너달이 걸릴 것이라는 섣부른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한화와 태광이 각각 9월16일과 10월13일 그룹본사 압수수색으로 공개 수사가 본격화된 점을 감안하면 이런 관측이 맞다면 두 그룹에 대한 수사는 올해를 훌쩍 넘기게 된다.
예전에 검찰의 SK그룹과 현대차그룹 수사가 모두 80∼120여일이 걸렸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검찰은 과거 한보 비리 등을 수사할 때와 달리 자백에 의존하기보다 물증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 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재계의 불만과 검찰 수뇌부가 '환부'만 신속하게 도려내는 수사를 강조하는 점은 저인망식으로 진행되는 한화, 태광 수사에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