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싼 연료 연탄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
겨울되면 골목길 어디서든 지겹게 볼 수 있던 풍경이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뭐 최근엔 가끔 고깃집에서 고기 구울때나 조금 본 것 같네요.
하지만 이번에 연탄취재를 하면서 "와~ 연탄 아직 죽지 않았구나" 새삼 놀라게됐습니다.
연탄을 두고 '가장 값 싼 연료'라고 한다죠.
한 장에 500원, 서민들에겐 참 고마운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연탄공장을 찾아가는 것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지방 내려가야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서울에도 아직 연탄공장이 남아있더군요.
조금 놀랐습니다. 도심에, 그것도 아파트 숲 사이에 버젓이 연탄공장이라니..아니나 다를까, 인터뷰에 응하신 연탄회사 임원분의 첫마디는 "취재에 응하지 않으려 했다"였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예전에도 이 연탄공장이 언론에 몇 번 나왔는데, 그때마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무척 거센 항의를 받았다는겁니다.
집 옆에 있어서 가뜩이나 못마땅한 연탄공장, 왜 언론에까지 나서냐는 거지요.
공장 관계자분은 그러면서 공장이 어느 동네에 있는지는 기사에 넣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솔직히 제가 그 아파트 주민이라도 집 바로 옆에 연탄공장이 있는거 달갑지 않았을겁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공장들이 모조리 외딴 지방으로 내려간다면 운임비가 붙을 것이고, 당연히 가격은 지금보다 올라가겠죠.
지금도 500원이 없어서 연탄 한장을 못사고 추위에 떠는 불우이웃이 많다는데..여기서 값이 더 오르는 일 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연탄공장 풍경입니다.
아침 6시 '땡'하자마자 직원이 나와 공장을 가동하는 '녹색버튼'을 누릅니다.
한쪽에선 석탄가루를 퍼나르는 대형지게차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한쪽에선 연탄을 찍어내는 기계가 시끄러운 소리를내며 돌아갑니다.
그렇게 뚝딱뚝딱 찍어낸 연탄은 이내 컨베어벨트를 타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죠.
새벽 4시부터 와서 대기하고 있던 연탄장수들은 이렇게 나온 연탄을 선착순으로 자신의 트럭에 옮겨싣습니다.
한시간이 흐르고 두시간이 흐르고 해가뜨는데도 연탄장수의 트럭은 줄지를 않고 오히려 늘어나더군요.
연탄쓰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 얼마나 많은가 하면요, 제가 취재한 공장은 하루에 연탄을 30만장 찍어낼 수 있는데,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서부터는 하루 주문이 40만장 가까이 들어온답니다. 생산가능량을 초과한거죠.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않고 돌려도 연탄을 못받는 고객이 있다는겁니다.
생각외로 엄청났던 연탄의 인기, 원인은 '고유가'에 있었습니다.
연탄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게 언제부터인지 혹시 기억나십니까?
1988년 '88올림픽' 때부터라고 합니다. 당시 도시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연탄이 많이 사라졌었죠.
이렇게 자취를 감춰가던 연탄이 2005년경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합니다.
IMF사태때 생겨난 '신빈곤층'이 끝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착화 된 것도,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시작한 것도 이무렵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자, 이제 물건뗀 연탄장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나 따라가보겠습니다.
부지런을 떨어서 남보다 일찌감치 연탄을 뗀 연탄장수들은 아침먹을 시간도 없이 곧바로 배달에 들어갑니다.
배달차를 따라다녀보니, 포장마차에서 연탄을 많이 주문하더군요.
아무래도 야외장사를 하니 연탄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역시 연탄의 주고객은 가정집입니다.
특히 저소득층이 많은 달동네일수록 연탄 수요는 폭발적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달동네이기 때문에 연탄트럭은 그 꼬불꼬불 가파른 언덕길을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일일이 들어 날라야 하는데, 인건비가 추가됩니다.
그래서 500원짜리 연탄이 달동네 꼭대기 까지 올라가면 천원에 팔립니다.
6평짜리 방을 하루종일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연탄 3장이 필요하니 하루에 3천원.
한달이면 10만원돈인데, 이걸 감당할 여유가 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게 안타까운거죠.
그래서 이맘때 꼭 필요한 것이 자원봉사자입니다.
일렬로 주욱 서서 연탄을 옆으로 옆으로 전달 전달하는 풍경이 이래서 나오는거죠.
그런데 자원봉사자 못지않게 중요한게 '연탄 기부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연탄을 쓰는 가구는 모두 27만가구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16만가구가 빈곤층이라고 합니다.
한 가구가 하루에 연탄을 3장씩 써야한다고 했을 때, 동절기 석달간의 연탄 소비량은 300장이죠.
15만 원이라는 돈, 어떤 분들에겐 결코 호락호락한 액수가 아니기에 연탄 기부자가 꼭 필요한겁니다.
다행히 많은 자선사업가 분들과 기업 등이 나서 연탄기부를 꾸준히 해 주고 계십니다.
이들로부터 연탄을 기부받아 불우이웃에게 배분하는 일을 맡아하는 '연탄은행'이란 자선단체도 몇년 새 그 규모가 부쩍 커졌죠.
서울 중계본동 달동네에도 연탄은행은이 있는데, 그 곳을 운영하는 부부는 요즘 점심먹을 시간도 없답니다.
재빨리 라면이라도 한그릇 끓여먹을래도, 연탄좀 달라며 찾아오는 분 들 때문에 면발이 불어터져 못 먹고 버리기 일쑤라네요.
이렇게 몸이 괜찮은 분들은 저마다 수레를 끌고나와 연탄은행에서 하루 3장씩 배급을 받아가기도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선 연탄은행측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배달을 해줍니다.
참 보기 훈훈하고 정겨운 풍경에 취재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올 겨울에도 이런 식으로 모두 2억 천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연탄이 우리 서민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덥혀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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