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장 드라마'라는 말을 많이 쓰죠. 비윤리적인 이야기로 점철되면서 사건이 우연과 비약에 의해 전개되는 드라마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자극적인 내용 때문에 많은 시청자가 지켜보지만 작품에 대한 감동보다는 냉소와 실소를 머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이없는 스토리 전개를 보면서 속으로 이렇게들 생각하겠죠. '에이, 말도 안 돼. 저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겠어.'
요즘 한 재벌가를 둘러싸고 연일 불거지는 의혹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갑자기 막장 드라마의 시나리오 한편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어느 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스러운 스토리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 시나리오의 줄거리를 요약해보죠.
현금이 많기로 유명한 재벌가가 이야기의 무대입니다. 첫째 형과 둘째 형이 요절한 상황에서 아버지마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셋째이자 막내 아들은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굴지의 재벌그룹을 물려받습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막내아들은 이제 냉혹한 기업가로 변신할 것을 요구 받습니다.
이 아들은 자신의 친구 등 젊은 실력가들을 등용해 선대부터 그룹을 관리해왔던 노회한 임원들과 경쟁을 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 케이블 TV 인수와 대형 보험사 인수라는 대형 과제를 추진하게 됩니다.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판단될 만큼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미 저돌적이며 냉정한 사업가로 변한 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집안의 막대한 재력을 동원하기도 하고, 일가 친척을 관계 요로에 진출시켜 도움을 받는가 하면, 심지어 핵심 공직자에 대한 성접대까지 불사합니다. 감독 당국이 수상 쩍은 낌새를 채고 조사에 들어가면 전방위 '마사지'로 피해가거나 최소한의 처분만 받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재산을 불리던 사업가는 불현듯 훗날이 걱정됩니다. 집안 내력상 자신의 건강에 갑자기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데 아직 자녀들은 너무 어립니다. 여기에 집안 갈등도 불거집니다. 요절한 큰 형님의 자녀, 즉 집안의 장손이 어느새 부쩍 성장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그룹의 재무와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실력자 어머니도 왠지 장손편을 드는 눈치입니다. 마음이 급해진 사업가는 편법 상속에 나섭니다. 자신과 배우자, 자녀가 100%의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에 그룹의 알짜 주식들을 마구 넘깁니다. 그룹 내 일거리를 몰아줘 순식간에 회사 규모를 키워줍니다. 막대한 상속세나 증여세를 곧이 곧대로 물었다면 자신의 그룹에 대한 지배권이 현저히 약해질 수 있었는데 이런 문제점을 교묘히 피해갑니다. 다른 재벌그룹에게서 배운 수법이 기가 막히게 통했다며 사업가는 뿌듯해합니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가 발 밑에서 뭉게뭉게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지나친 불법, 탈법 행위를 말리던 젊은 측근들과 반목과 갈등을 빚더니 내쫓습니다. 그룹내 힘든 일을 맡아달라며 모시듯 데려왔던 전문가들도 몰아냅니다. 결국 노회한 전통의 가신들이 다시 그룹의 헤게모니를 잡습니다. 더이상 견제할 세력도 없습니다. 집안 내부의 불만 세력과 그렇게 쫓겨나간 과거 임직원들, 무자비하게 잘려나간 노조원 등 적을 사방에 만듭니다.
아니나다를까 수사 당국이 이런 사업가의 적들로부터 각종 정보와 첩보를 입수해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합니다. 오랫동안 자라온 각종 의혹들이 동시에 터져나오지만 손을 쓸 방법이 없습니다. 도와줄 친구도, 지원세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업가와 재벌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두둥!
정말 자극적이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막장'이라 욕은 먹겠지만 시청률은 떼놓은 당상일 것 같은데요. 아니라고요? 표절의 냄새가 너무 짙다고요? 현실에서 이미 자세히 봐서 식상하다고요? 음,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니 요즘 시나리오 작가들은 참 일하기 힘들겠네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