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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후 통신차단"…조직적 은폐 확인

박세용

입력 : 2010.10.0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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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8일)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지 11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당시 일본 외교관의 회고록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박세용 기자입니다.

<기자>

1895년 10월 8일 새벽.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가 잔인하게 시해된 날입니다.

일본 공사 미우라의 사주를 받은 일본 낭인들에 의해서입니다.

당시 서울에서 일본 외무성 영사로 근무했던 우치다의 회고록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회고록은 "시해 사건을 (일본) 외무성에 알리려 했으나 미우라 공사의 명령에 따라 무전을 칠 수 없었다"고 적혀있습니다.

미우라 공사는 오히려 '어젯밤 조선 왕성에서 변이 있어 왕비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거짓 전보를 보낸 것으로 명기돼 있습니다.

미우라 공사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진상보고를 차단하고 자신이 허위 보고를 했다는 뜻입니다.

[최서면/국제한국연구원장 : (미우라 공사가 금지한 전신 이외의) 별도의 전보가 있어서 그 방에 가서 본국에 이 사건은 미우라 공사 주도하에 이뤄진 걸 알린 문서입니다.]

우치다 영사는 무전이 통제되자 별도의 전신망을 활용해 사건의 전말을 담은 보고서를 일본 외무성에 보냈다고 기술했습니다 . 

회고록은 또 "시해 직후 일본인이 피묻은 칼을 들고 대낮에 경성 거리를 걷는 걸 조선인은 물론 외국인도 틀림없이 봤다"며 일본의 책임을 명확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