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대관령 1,100m에 위치한 고랭지 배추 주산지인 안반덕을 취재한 28일. 6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배추밭에는 성한 배추가 한 포기도 없었습니다.
한여름에도 선선한 대관령 고지대에 30도가 넘는 폭염과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배추들이 속썩음병이 생기고 생육이 부진해 작황이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친겁니다. 이맘때쯤 한창 출하돼야할 고랭지 배추들은 온데간데 없고 트랙터 한 대가 밭을 갈아엎고 있는 상황. 배추 대란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 방문한 평창의 해발 600m 준고랭지 배추밭. 고랭지 배추의 출하가 끝나면 준고랭지 배추가 출하돼야 하는데 이곳 배추는 아직 속이 덜 차 다음 달 10일에나 출하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라북도 진안의 김치공장 직원이 이곳까지 배추를 구하러 달려왔지만 물량이 없어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할 형편이라고 하더군요.
이 직원은 생산량의 80%가 학교급식용인데 김치가 없어 깍두기나 총각김치 등을 대신 납품하고 있다며 하소연하더군요. 그나마 출하 중인 배추를 볼 수 있었는데, 2.5kg 이상 나가는 속이 꽉 찬 배추가 아니라 부피가 얼갈이처럼 준 보쌈용 배추였습니다.
그나마 물량이 없어 수확하는 즉시 팔려나가는 상황. 이 농민은 기자에게 "10월에는 서울 사람들 배추 구경하기 어려울"이라는 암울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10월 10일 이후에 출하 가능한 준고랭지 배추들은 이미 계약이 끝나 김치공장 등에 납품된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최대 김치제조업체인 ㅈ사의 경우 다음 달 10일까지 수출 물량을 뺀 내수용 김치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김치조합에 가입된 90여 개 중소 업체들도 일시 가동을 중단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기자가 방문한 부천의 중견 김치제조업체 사장은 20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돈을 줘도 배추를 못 사고 김치를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거죠. 100여개 학교에 김치를 납품하는데 연초에 계약한 단가 이상 줄 수 없다며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먹는 급식에서마저 배추김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문제는 김장철입니다.
10월 하순에 출하되는 가을배추는 7월 말이나 8월 초 파종한 것들인데 작황이 썩 좋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11월~12월에도 물량이 달릴 것으로 전망돼 전남 해남이 주산지인 월동배추를 앞당겨 출하해야 할 실정입니다.
온 국민이 즐겨 먹는 김치가 금치가 되버린 작금의 현실…아무리 날씨 탓이라고 해도 시장에 들렀다 1포기에 만 원하는 배추를 구경만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서민들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정부가 10월1일 김장 배추 수급대책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절임 배추를 수입하고 월동배추를 앞당겨 출하하는 등의 대책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배추를 사재기해 폭리를 취하는 업자들에 대한 단속도 한다고 합니다. 실효성 있는 대책들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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