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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포터] '태극소녀 신화'에서 배워야 할 10가지 덕목 (하)

김광태

입력 : 2010.09.28 14:15|수정 : 2010.09.28 15:39


6. 투혼

17세 여자대표팀에는 유독 부상 선수가 많았다. 그런 만큼 몸만으로는 안 돼 '혼을 던진'선수들도 많다.

에이스 여민지는 대회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무릎 십자 인대를 다쳐 '대회에 뛸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록 훈련량도 부족했고, 대회 기간에도 완치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놀라운 집중력과 골 결정력을 발휘하며 세계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조별리그에서 1골1도움의 활약을 펼친 공격수 김다혜는 대회 초반부터 몸을 사리지 않고 뛰다 탈이 났다. 2차전 경기 도중 왼쪽 발목 인대 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독일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 나설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 17세 여자대표팀의 사상 첫 우승에 진출한 데에는 '뇌진탕 투혼'을 펼치며 끝까지 골문을 지킨 김민아의 공도 컸다.

김민아는 6-5 난타전 끝 승리를 거머쥐었던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 공을 잡으려다 상대팀 선수와 충돌해 뇌진탕을 일으켰고, 이때 여파로 4강전까지 몸상태가 평소보다 한참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끝까지 대한민국의 골문을 지켰다. 일본과 결승전에서도 세밀한 패스에 이은 완성도 높은 슛을 날린 일본의 공세를 부지런히 막아내 우승에 힘을 보탰다.

7. 집념

20세 여자대표팀을 맡았던 최인철 감독에 대한 일화다. 대표팀 감독 초임시절, 한 마디로 '윗사람에게 찍힌'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대표팀 숙소의 식사시간, 최 감독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된 대표팀의 한 간부가 가장 늦게 내려와 대화도 없이 밥 먹고 식사가 끝나자 바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간 최 감독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간부의 '오해'는 금새 풀렸다. 대회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최 감독이 앉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경기 분석에 열중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당시 못마땅히 여겼던 때도, 최 감독은 경기를 분석하다 내려와 밥만 먹고, 지체할 새 없이 숙소로 올라가 경기 분석을 했다는 것이다. 집념에서 생긴 습관이었다. 최 감독은 누구보다도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집념을 발휘했다.

2000년 동명초등학교 여자축구팀 창단 감독으로 있었던 이후 오주중, 동산정보고(前 위례정산고) 감독 등을 거치며 꾸준히 여자팀 감독을 맡아왔고, 앞으로도 남자 팀에 눈을 돌리지 않고 여자축구 발전에 힘을 쏟겠다고 말할 정도로 집념 강한 지도자다.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과, 이를 발전시키고자하는 집념은 이번 쾌거의 큰 밑거름이었다. 

8. 뒷받침

숨은 행정 지원은 '여자축구 황금세대'의 시작에 중요한 발판이었다. 잘 알려진 2002 한일월드컵 잉여금 투자 외에도 여자축구 관계자들의 세밀한 지원이 있었기에 여자축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바뀌었고, 가시적 성과도 따랐다.

5명 남짓 상주했던 여자 축구연맹 직원들은 당장의 성적도 좋지만, 여자축구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애썼다.

가장 먼저 '남자 아이들이 하는 격렬한 운동'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각급 지도자들에게 '아름다운 축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에 우락부락한 표정, 남자 선수들과 나란히 세워도 구분 안가는 여자 선수들에게 '경기력에 지장이 없다면, 자신을 가꿔보라'고 권장했다.

   

각 대회의 스폰서들도 여성 의류업체와 가방업체 등을 선정해 선수들이 '꾸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고, 선수들 스스로도 그간 감춰왔던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2006년 피스퀸컵 여자축구대회에 앞서서는 앙드레김 패션쇼 무대에도 여자축구 선수들을 세우기 위해 애썼다. 선수 본인들이야 '하이힐보다 축구화가 편하다'며 어색했지만 드레스를 입혀 놓으니 축구선수인지 모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여자축구가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얼짱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20세 대표 문소리나 인터넷상에서 일본 선수와 '얼짱 대결'을 펼치기도 했던 이유나 같은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선수들이 나타난 것도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운동만 하는 선수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 '공부하는 축구' 실천을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한 학습지 회사의 지원을 이끌어내 대부분의 여자축구선수들이 학습지를 통해 마음 놓고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9. 온화함의 힘

17세 이하 대표팀의 최덕주 감독은 '온화한 리더십'의 대명사였다. 언뜻 보면 큰 체격에 희끗한 머리, 큰 코에 이마주름까지 '호랑이 선생님'으로 비춰지기 쉽지만, 아이들 한명 한명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선수들의 큰 실수에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우승 뒤 인터뷰를 살펴본다면, 겸손함과 온화함을 갖춘 따뜻한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우승 후 그는 "어떠한 감독이라도 이 선수들을 데리고 벤치에 앉았더라도 우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경기를 봐도 안 풀린 순간 화를 내거나 답답해하는 모습 대신 골똘히 고민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승 후에는 한없이 맑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향해 박수쳐줬다. 여민지는 이런 최 감독에 대해 "따뜻한 아버지 같은 감독"이라고 표현했다.

'공을 즐겁게 차는 일'을 우선으로 여긴다는 최 감독. 그의 철학은, 승부 앞에서는 체벌도 욕설도 마다 않는 한국 체육계는 물론 승패에 연연해가며 남을 헐뜯는 게 일상이 된 우리 사회에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10. 순수함의 힘

선수들은 이런 온화한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했다. 좋은 말로 하면 '만만하게 보는' 요즘 시대 사람들의 나쁜 습관은 없었다. 순수하고 진심어린 가르침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한 순수한 소녀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신화 창조'다.

'순수함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불순물 없이 만들어진 쇳덩이가 가장 강하듯, 다른 생각 않고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들의 자세가 세계 정상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물장구 치고 깔깔거리던 소녀의 모습 그대로, 경기장에서는 나라를 대표한 여전사와 같은 투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우리들이 '태극소녀 신화'에서 배워야 할, 쉬워 보이면서도 행하기는 어려운 마지막 덕목이다.

김광태 SBS U포터 https://ublog.sbs.co.kr/collomb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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