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에 찍힌 스프링클러 절도범, 잡고 보니... (이런 게 뉴스에 나올 일인가?!)
괄호 속 한마디는 어떤 시청자 분이 뉴스를 보고 제게 보내주신 메일 내용입니다. 뉴스에 보도됐고, 제가 취재했던 내용은 이렇습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스프링클러 차폐판이라는 부품만 수백 개를 훔쳐간 사람들을 경찰이 붙잡았습니다. 돈이 필요한 '생계형 절도'의 경우 구리전선이나 소방호스 금속마개, 맨홀 등을 가져가는 건 봤어도 차폐판이라는 부품이 비싼가 했더니 한 개에 만 8천 원. 그렇게 고가의 품목은 아니었습니다.
절도 피의자들은 알고보니 그 부품을 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조업체 사람들이 왜 새 아파트에 설치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멀쩡한 부품을 훔친 걸까요?
거래업체가 부도가 나서 대금 천만 원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일종의 잔꾀를 냈던 겁니다. 차폐판이 없어지면, 다시 자기네 업체로 주문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물건을 훔친 거죠.
CCTV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따로 복면을 쓰거나 모자를 눌러쓰지도 않고, 마치 스프링클러 점검하는 사람들처럼 툭툭, 차폐판만 떼어냈습니다. 한눈에 봐도 전문절도범 같지 않고, 실제 경찰조사 결과 전과 하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버젓이 설치된 CCTV 앞에선 물건을 훔치기 두려워 CCTV를 피해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차폐판만 떼어가려 했는데, 수도관에 가려져 있는 CCTV를 못 보고 범행증거를 고스란히 남기게 된거죠.
다시 제게 메일을 주신 시청자의 항의를 생각해 봅니다. 사실 저도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듣고 굉장히 선명한 화질의 CCTV를 본 뒤에도 이걸 기사화하는 게 맞을까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뉴스에서 '정말 나쁜놈'도 아닌데 굳이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알려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천만 원 대금을 못 받아서 작은 회사가 어려워졌는데, 4백 30만 원어치 부품(그것도 자신들이 만든 부품) 회수했다가 다시 주문 받아서 어떻게 살길을 도모해보자는 절박하고도 순진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사를 쓰면서도 소위 '나쁜놈'들이라는 것보다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 부린 '안타까운 잔꾀'였다고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엄연한 사실을 기자가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되겠지만 사건을 수사한 경찰도 계속해서 "사실 좀 사연이 딱하긴 하다"고 했으니까요. 분명한 건 피의자들에게 '특수절도' 혐의가 적용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사연이 딱하긴 해도 범행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CCTV가 있다면 다음번에 비슷한 사건이 있더라도 저는 기사를 쓸 것 같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서 '공분을 자아내는 기사'와 '딱한 사정에 혀를 차게 만드는 기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막상 또 기사라는 게 그렇게 유형이 구분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부도난 업체에게 대금을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겠지만, 그렇다고 또다시 법을 어겨가며 도모한 잔꾀의 끝은 법을 어긴 데 대한 응당한 처분일 뿐이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