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검이 김승연 회장의 수백억원대 은닉재산의 윤곽을 확인하면서 이 돈의 불법성을 두고 검찰과 한화 사이에 '진실게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한화 계열사에 분산된 채 입출금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김 회장 측이 계열사에서 빼돌린 돈으로 자금을 조성했을 개연성이 있고, 2002년 대한생명 인수로비 때처럼 정관계에 돈을 뿌렸을 수도 있다고 보고 수사 강도를 점차 높이고 있다.
반면 한화그룹은 이 돈이 고(故) 김종희 선대 회장이 김 회장에게 물려준 개인재산인 만큼 횡령이나 불법로비와는 무관하며, 차명재산의 미납세금에 대한 법적 책임만은 충실히 지겠다며 맞서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가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한화 의혹'을 최대한 빨리 규명한다는 방침이어서 검찰과 한화 사이의 '진실게임'이 곧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검찰에 따르면 서부지검은 이 수백억원대 자금이 그룹 계열사들이 낸 돈을 토대로 키워졌다는 회사 관계자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확보하고 한화 측의 불법횡령임을 입증하고자 차명계좌 추적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또 이 자금이 '중요한 회삿돈'이라는 한화측 진술이 나오고 김 회장 측근들이 10∼20년 몰래 계좌를 관리한 점 등을 볼 때 김 회장 측이 그룹 이권을 노려 정관계에 돈을 뿌렸을 공산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용처를 추적하고 있다.
과거 검찰수사에서 한화그룹은 2002년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정관계에 수십억원을 뿌리려고 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당시 김 회장은 로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증거가 없어 처벌을 면했다.
그러나 한화그룹은 문제의 돈이 김 회장의 비실명 상속재산일 뿐이라며 검찰측 의구심을 일축하고 있다. 한화 측은 다만 비실명 개인재산의 운용과정에서 이뤄진 세금포탈의 잘못만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한화그룹은 검찰이 확인했다는 차명계좌 50여개도 그룹 측이 지난 13∼14일 검찰에 자발적으로 제출한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불법 비자금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 회장 측이 오래된 선대 유산을 관리하다 금융실명제를 제대로 못 지켜 은닉재산의 오명을 썼지만, 횡령으로 자금이 조성되고 불법로비에 사용됐다는 것은 근거없는 억측이라는 것이다.
한화 측은 다만 김 회장의 은닉재산 운용과정에서 발생한 세금포탈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이다.
그룹 측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정리되면 세금납부 등 관련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문제의 자금은 상당액이 한화 계열사 주식에 투자돼 있고 일부가 김 회장 친인척에게 흘러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 김 회장은 상속재산 비실명화와 증여세 미납 등에 따른 법적·도의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증여세 포탈의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은 추석연휴 이후에 문제의 자금 관리에 관여한 한화그룹 임원들을 차례로 불러 자금의 조성 경위와 용처를 추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김 회장 소환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지난 13일 중국 톈진(天津)에서 개최된 하계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고자 출국했다가 17일 귀국 일정을 넘겨 계속 중국에 머무르는 상태다.
그룹 측은 김 회장이 지난달 인수한 중국업체와 관련한 업무가 많아 귀국을 연기했으며 늦어도 24∼25일께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