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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한 푸틴, 일단 말은 화끈하게

박민하

입력 : 2010.09.23 11:24|수정 : 2010.09.23 13:26

현대차 러시아 공장 준공식 표정


9월21일.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市 북서쪽 카멘카 지역.

27개월 간의 공사 끝에 준공한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공장이 있는 곳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준공식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검색은 철저하게 이뤄졌다.

식전 행사가 열렸다. 러시아 민속춤에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발레 공연이 이어졌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이 공장은 당신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현지 시각 오후 1시. 푸틴 총리가 도착해서 준공식이 시작돼야 할 때였다. 하지만 푸틴 총리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 40분쯤이 흘렀다. 행사에 참석한 러시아 인사들과 기자들이 불평을 터뜨리지 않는 게 신기했다.

오후 2시40분쯤 드디어 푸틴 총리가 나타났다. 러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존경심에서인지, 또는 푸틴 총리의 얼굴을 더 잘 보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늦게 온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행사장에 들어오자마자 단상으로 직행한 푸틴 총리는 현대차를 화끈하게 띄워줬다. 푸틴 총리의 환영사는 대략이랬다.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현대차가 러시아 공장을 준공하게 됐다. 2년 전 기공식이 있었고, 그 사이 금융위기가 발발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고 의무감을 갖고 이행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이 현대차의 6번째 해외 공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나라에 지은 공장에 비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 공장은 全 생산 공정을 갖추고 있다. 러시아에 첨단 기술과 장비, 그리고 새로운 생산문화를 도입할 것이다.  또 소득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고 각 분야에서 조세 수입도 있을 것이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양국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 때 오늘 행사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늘 행사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가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한 지 20년 되는 해다.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현대차가 기업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그리고는 이 공장에서 생산될 소형차 '쏠라리스'를 직접 운전했다. 현대차가 러시아 시장 특성에 맞춰 신형 베르나를 변형한 전략 모델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옆 좌석에 앉아 이 실세 총리를 안내했다.

행사장 옆 공장 내부 라인을 약 1분간 돌고 왔는데 실내 운전치고는 매우 빨랐다. 정몽구 회장은 극진한 태도로 푸틴 총리를 예우했다. 푸틴 총리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연설과 퍼포먼스, 상징을 위한 것이었다.

목적은 100% 이상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푸틴 총리 입장에서도 이 공장은 여러 상징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선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지난 2008년 290만 대가 판매된 거대 시장이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러시아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자동차 판매 대 수는 147만 대로 1년 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주변 산업으로 파급 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의 몰락. 러시아 경제성장률을 -7.9%로 곤두박질쳤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수입차 관세를 5%포인트 올렸다. 신차 관세는 25%에서 30%로, 중고차 관세는 30%에서 35%로 올라갔다.

올 1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시작으로 폐차 인센티브가 시작됐다. 11년 이상된 노후 차량을 폐차하고 새 차를 사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대당 5만 루블, 우리 돈으로 190만 원 가량 되는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생산된 신차를 살 때만 적용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 제도는 3월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이런 제도들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을 자극했다. 러시아 시장을 놓칠 수 없는 까닭에 현지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도요타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캠리 생산량을 늘렸다. 닛산도 생산 확대 발표에 가세했다. 포드와 GM도 생산라인 확대를 위해 근로자를 추가 고용하기 시작했다. 현대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준공도 이런 흐름 속에 있었다.

정치적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푸틴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이다. 푸틴은 과거 러시아 헌법재판소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전한 바 있다. 고향에 대한 강한 애정의 표현이다.

현대차 공장은 11개 협력업체와 함께 5,300여 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상당한 공장 준공식에 푸틴이 참석할 이유로 충분하다.

여기까지는 양측의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공적인 시작이 성공적인 과정과 결말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글로벌 메이커들의 각축장이 된 러시아 시장에 착근하는 일은 푸틴의 화끈한 지원 사격을 이끌어낸 것보다 훨씬 어려울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