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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전매제, 빨리 죽어야 돈 되는 산업?

이병희

입력 : 2010.09.13 09:50


생명보험 전매(Life Settlement)라는 제도를 아시나요? 개인이 갖고 있는 보험계약을 아파트 분양권처럼 필요에 따라 사고 팔 수 있는 제도입니다.

약 100년 전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사실 초창기에는 그다지 큰 인기가 없던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급성장해 현재는 미국에서만 약 200억 달러(24조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험전매 시장이 갑자기 커진 배경에는 AIDS가 있었습니다. 생명보험 가입자 가운데 에이즈에 감염된 경우가 많아졌는데, 앞으로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돈은 궁한데, 그렇다고 보험을 해약하자니 환급금은 너무 적다보니 보험 전매제도의 필요성이 급속도로 커진 겁니다.

작동 원리는 간단합니다.

보험이 더 이상 필요없는 계약자가 (단, 계약 후 5년이 경과한 보험상품이어야 합니다) 보험 전매회사에 보험계약을 넘깁니다. 보험 전매회사는 보험 계약자가 지금까지 불입한 보험료의 합계보다는 적지만, 보험사의 해약 환급금보다는 많은 돈을 계약자에게 지급합니다.

보험계약을 구입한 보험 전매회사는 기존 계약자 대신 매달 보험료를 내주고, 이후 前 계약자가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했을 때 받게 될 보험금을 대신 수령해 수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보험전매제도는 보험 가입자가 보험료를 낼 형편이 못 되거나, 낼 필요가 없는 상황에 됐을 때, 터무니없이 적은 해약환급금으로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불합리한 구조를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습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서 영국, 독일, 호주, 싱가폴 등에서도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는 생소한 제도인데, 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지난해 보험전매제도를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르면 오는 11월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험을 해약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4~5년 꾸준히 보험료를 내도 돌려받는 환급금은 불입 금액의 45%, 10년 이상 유지했어도 60%를 조금 넘는 정도만 해약금으로 받고 있는 실정이어서, 보험 가입자 권익 향상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이 제도에 대해 상당히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생명보험협회는 지난주 미국 푸르덴셜 생명보험의 James J.Avery 사장을 초빙해 국제세미나까지 개최하며 보험 전매제도의 부작용을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무엇보다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험계약을 구매한 전매회사로서는 보험을 판 기존 계약자가 빨리 죽거나 아파야 빨리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사람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산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부도덕한 인센티브'라는 거죠. 특히 미국에서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에이즈 감염자들이 자신들의 생명보험 계약을 전매회사에 많이 팔았지만, 에이즈 치료약이 속속 개발되면서 이들의 수명이 길어졌고, 결국 전매회사의 수익구조에 상당한 먹구름이 낀 겁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전매회사들은 판단력이 미약한 노인이나 환자, 노숙자들을 꾀어 보험에 가입시켜, 보험계약을 구매한 뒤 이들의 조기 사망을 기대하는 웃지 못할 일들을 벌였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전매제도 보다는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노후 생활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출상품을 개발하는 등 보 대안을 모색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험 해약을 해 본 계약자들의 불만은 한결같습니다. 꼬박꼬박 부은 보험료에 비해 해약 환급금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겁니다.

보험 전매제도는 과연 이런 보험소비자들의 단골 불만사항을 해소해 줄 명쾌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보험업계 주장대로 사람 빨리 죽기를 바라는 악덕 투자가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까요?